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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은소리 Jul 15. 2024

어쩌면 나의 공황장애 첫 뿌리가?

부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유년시절을 떠올려본다. 중학교까지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봄, 어느 일요일!

시골은 농번기였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아무리 집안의 귀여움 받고 자란 늦둥이 막내였지만 라면 정도는 손수 끓여 먹을 수 있는 나이였다.



부엌 한쪽 끝에 있던 짙은 빨간색 곤로 심지에 성냥불을 붙이고 누런색의 양은 냄비에 물을 붓고 물이 끓기만을 쪼그리고 앉아서 기다렸다.

그날따라 물 끓는 시간이 왜 그리도 길게만 느껴졌는지...

드디어 물의 기포가 뽀끌뽀글 올라온다.  삼양 라면을 두 동강 내서 넣고 수프도 함께 탈탈 털어 넣었다.

보글보글 라면 끓는 냄새가 부엌에 진동할 즈음

몇 분 동안 침이 꼴까닥 하고 넘어간다.


어릴 적 라면은 이 세상 어떤 맛과도 비교할 수 없었던 신세계의 맛으로 기억한다. 인스턴트 시대의 위대한 개막을 알리는 기적 같은 존재였으니까~


호로록호로록 짭짭 기막히고 맛있게  라면 한 그릇을 해치웠다. 그 모습을 본 아빠가 내게 건넸던 한마디

“라면이 그렇게 맛있어?”

평소 입 짧은 막내딸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다.

.

늦은 오후!

친구집에 가서 놀다 집에 오니 

아빠는 쓰러져 계셨고... 충격적인 모습을 가족 중 내가 제일 먼저  발견하곤 나도 잠시정신을 잃었다.


온 동네가 떠나갈 고막이 찢기는 듯한 소리를 내는 앰불랜스에 실려간 아빠!

병원에서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시지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아빠는 어떤 사건으로  심한 충격받아 심장마비로 쓰러지신 것이라 한다.


돌아가 시 전 일주일 전만 해도 친구분과 멀쩡히 000 온천여행을 다녀오실 만큼 건강하셨는데...


그때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나이.

절대적으로 엄마 아빠가 필요한 시기였다.




아빠와 나는 여름철이면 평상에 누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자리를 다정하게 설명해 주셨었는데 이젠 아빠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철척같이 어린 딸에게 약속해 놓고 내 곁을 영영 떠났다.


아빠가 떠나시던 날 맛있게 었었던 라면이 몇 년간은 정말이지 꼴도 보기 싫었다.

아니, 먹지 못했다.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그때 느끼게 되었다,

그 공포는 아직까지도 앰뷸런스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증상으로 남아있다.


당시

엄마마저 죽으면 어떡하나 싶어 자꾸만 엄마에게 엄마 죽지 마! 엄마 죽으면 안 돼!

를 연신 이야기를 하였던 기억이 다.



키 작고 깡마른 중학생 짜리의 봄은 그렇게 첫 상처의 암흑으로 가득 찼었다.



며칠 전 퇴근해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알 수 없는 슬픔이 갑자기 훅하고 몰려와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 쉽게 제어가 안된적이있었다. 그리고 그날밤 잠들기 전에 먹는 약을 먹어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밤새 뒤척였다.


내 마음의 많은 상처들! 과연 언제쯤이면 다  이겨낼 수 있을까?


어쩌면

현재, 겪고 있는 공황장애가 어릴 적 아빠의 죽음으로 느꼈던 공포와 불안감 상실감에서 시작된 뿌리가 아닐까 의심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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