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홍콩에 출장을 가면 꼭 사 오던 육포 브랜드가 있었다. ‘비첸향’이라는 것이었는데, 불에 그을린 향과 달콤한 맛이 어우러져 씹을수록 기분 좋은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제는 한국 대형 마트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만, 그 시절엔 꼭 홍콩에서 사 와야 하는 로망 같은 존재였다.
이 육포 외에도 제니 쿠키, 허유산 망고 주스, 에그 타르트 등 홍콩을 상징하는 먹거리리는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홍콩은 한국 인구의 5분의 1에 불과하지만, 골목마다 다른 풍경과 문화가 숨어 있는 도시다. 구룡과 홍콩섬 사이에도 문화적 결이 확연히 다르며, 서구와 동남아 문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쇼핑 아닌 하이킹의 매력
한동안 홍콩은 쇼핑의 도시로만 인식되었다. 나 역시 출장 마지막 날이면 늘 쇼핑몰로 향했다. 하버시티에서 50% 할인된 청바지를 득템했을 때의 뿌듯함은 잊을 수 없다. 당시에는 한국에 없는 브랜드도 많았고, 특히 ‘COS’ 매장의 감도 높은 디자인과 강렬한 색채는 홍콩에서만 누릴 수 있는 매력이었다.
그러나, 홍콩의 진짜 매력은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자연이다. 왕복 1-2시간 코스부터 하드코어 코스까지 다양한 하이킹 루트가 있고, 지하철과 미니 버스를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등산로 입구에 닿을 수 있다. 산을 오르다 고개를 들면,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와 도시 풍경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홍콩은 바다와 산을 동시에 품은, 도심 속 힐링 도시다.
Mid-Levels 에스컬레이터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긴 외부 에스컬레이터로 알려져 있는 그 길이가 100M에 달한다. 이 에스컬레이터는 내가 살던 집에서 빅토리아 피크 하이킹 입구까지 연결해 주었다. 주말 아침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BTS 음악을 들으며 올라가던 길, 구름 아래로 펼쳐지는 도심의 풍경은 지금도 선명하다.
바다와 야경, 그리고 사람들
홍콩은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도 유명하다. ‘케이지 홈’이라 불리는 공간은 말 그대로 새장 같은 집이다.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화려한 도시의 어두운 그늘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살아간다. 나는 그 힘의 근원이 바다에 있다고 믿는다. 집을 나서면 금세 탁 트인 바다가 펼쳐진다. 바다와 도시가 만들어 내는 풍경, 아경, 레이저 쇼. 이 모든 것이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갈 에너지를 건네는 듯했다.
결혼식을 앞두고, 소중한 사람들을 홍콩으로 초대했다. 내 남편과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 이루어진 곳,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도시에서 함께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드레스 코드는 핑크와 초록. 해피 아워를 즐긴 후, 우리는 배에 올랐다. 새빨간 돛을 단 나무 배는 과거 홍콩 영화 속 장면 같았다. 고요한 바다 위에서 마주한 야경은 숨이 멎을 듯 아름다웠고, 그 순간 함께한 얼굴들은 지금도 또렷하다. 언젠가 리마인드 웨딩을 할 수 있다면, 다시 그 배에 올라 그 날을 되새기고 싶다.
홍콩 지하철역의 에스컬레이터는 놀랄 만큼 속도가 빠르다. 그 속도가 곧 홍콩의 삶의 속도라고.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휘청거릴 정도다. 어쩌면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기에 노화가 더디고, 에너지가 넘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