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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Mr. Cody, 첫 만남

by Lucia


‘중국 마켓 담당, 남성복 유경험자, 중국어 가능자’. 구인 공고를 여러 번 들여다 봤다. 나는 보통 ‘할 수 있다!’라는 태도로 도전하는 편이지만, 이번엔 자신감이 들지 않았다. 조건을 하나씩 비교해 보니, 내 경력과 맞는 항목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 마켓을 간접적으로 담당한 적은 있었지만 깊은 이해도는 부족했다.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일했지만 남성복 경험도 없었다. 중국어도 개인 교습까지 받았지만 대화라기 보다는 문장 암기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래도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 부족하더라도 도전해보기로 했다.

며칠 뒤, 면접 날짜가 잡혔고 나는 Cody(코디)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비서의 안내를 받아 사무실로 들어갔다. 코디는 일본계 미국인이었고, 60대로 보였다, 말이 느리고 조심스러웠는데, 지루하다기보다 오히려 세련되고 여유 있는 인상이었다. 나의 말을 유심히 듣고 반응하는 그의 태도가 인상 깊었다. 첫 면접 이후 몇 달 간 인터뷰는 이어졌다. 코디의 팀원 중 한 명인 인도계 미국 여성과도 미팅이 잡혔다. 그의 판단만이 아닌 팀원들의 의견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때로는 센트럴의 쇼핑몰에서 만나 아케이드를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지나가면서 보이는 브랜드들에 대해 내 의견을 말해보라고 했었고, 나는 차분히 답했다. 마치 서술형 시험을 치는 기분이었다.


3개월 넘는 시간 동안 6-7차례의 면접이 있었고, 기대감도 커졌다. 중국 상해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불합격. 코디와의 첫 인연은 그렇게 끝났다. 그러나 짧은 만남이 내게 남긴 울림은 깊었다. 그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리더의 모습이었다. 말보다 시선, 조율보다 끌림. 코디라는 사람 자체가 강한 인상이었다. 그리고 2-3년이 흘렀다. 나는 MBA 교환학생으로 런던에서 공부했고, 홍콩으로 돌아와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낯선 번호로 문자가 왔다.


“하이, 루시아, 나 카르맨이야’ 코디 비서인데, 기억할지 모르겠네요. 잘 지내죠?”


나는 곧바로 답장했다.


“물론 기억하죠. 잘 지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회가 있다면, 전 언제든 얘기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그저 안부를 묻는 문자였지만, 내 직감은 그 너머를 읽었다. 몇 년이 지나 다시 만난 코디는 이제 ‘크리스찬 루부탱’ 아시아 지사장이 되어 있었다, 그는 함께 할 팀원을 찾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만났고, 처음보다 훨씬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나는 내 커리어의 방향성을 설명했다. 과거의 머천다이징 업무에서 더 나아가 리테일, 영업, 신규 사업 개발까지 경력을 확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심스러웠지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며칠 후, 나는 머천다이징과 리테일을 함께 맡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다. 나는 준비되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바를 명확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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