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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프랑스, 중국, 영국 룸메이트

by Lucia

코로나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나는 홍콩에서 한국으로 거처를 완전히 옮기기로 했다. 한국으로 이사 전까지 몇 달 간 머물 임시 공간이 필요했기에, 연단위 임차 계약은 피했다. 새로운 둥지를 찾으며, 홍콩에 처음 왔던 7년 전의 딜레마를 다시 마주했다. 접근성도 좋고, 집 크기도 넉넉한 곳을 찾기란 여전히 ‘미션 임파서블’처럼 느껴졌다. 물론 월세를 넉넉히 지불하면 가능했겠지만, 그럴 계획은 없었다.

나에게 집이란 단순히 쉼터 그 이상이다. 내부 공간뿐 아니라 외부 환경도 중요했다. 매일 걷는 동네와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영감을 얻고 자극을 받는 일이 내게는 의미 있었다. 20분만 걸으면 빅토리아 피크로 하이킹을 갈 수 있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인 소호 지역의 에너지 속에서 홍콩에서의 마지막 몇 달을 보내기로 했다. 월세가 비싼 지역이기에, 여러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공유 아파트를 선택했다. 마흔의 나이에 낯선 사람들과의 동거, 어떤 경험일지 궁금했다.



낯선 사람들과의 동거


공유 아파트에 어떤 룸메이트들이 들어올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호기심과 걱정이 뒤섞인 채 첫날을 맞았다. 어느 날 아침, 키가 2미터는 족히 넘을 것 같은, 손도 눈도 큰 영국 남자와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했다. 그는 홍콩에 있는 영국계 은행 지사에서 몇 달간 근무할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또 다른 룸메이트는 20대 프랑스 남자였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인턴십을 위해 홍콩에 왔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룸메이트는 피부가 유난히 하얗고 다소 까다로워 보이는 중국 남자였다. 우리는 짧은 눈인사로 서로를 소개했다.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이 달라 룸메이트들과 마주치는 일은 많지 않았다. 대신 냉장고 안의 다양한 식재료를 보며 각자의 식문화가 얼마나 다른지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가끔은 거실에 모여 음악을 듣거나 가벼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영어로 소통은 가능했지만, 유럽 친구들과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건 쉽지 않았다.

방 크기에 따라 나뉘는 월세


과거에는 룸메이트들과 함께 살며 월세를 N분의 1로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공유 아파트는 방 크기에 따라 월세를 다르게 책정되었다. 더 큰 방을 사용하는 사람이 더 많은 월세를 내는 방식이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합리적인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뒤는 계기였다.


나는 네 개의 방 중 두번 째로 큰방을 사용했다. 홍콩에서 오래 세월 살며 늘어난 살림을 정리할 수 있는 수납 공간이 필요했고, 창밖을 보며 글을 쓸 수 있는 작은 책상도 중요했다. 반면 프랑스 룸메이트의 방은 침대 하나만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작았지만, 집에 머무는 시간이 거의 없던 그에게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작별과 환영의 순환


몇 달 후, 영국 룸메이트가 본국으로 돌아가고 새로운 룸메이트가 도착했다. 포니테일이 잘 어울리는, 강한 영국식 억양을 가진 여자 대학생으로, 홍콩대학 교환학생이었다. 멕시코 출신의 호탕한 여자 룸메이트와도 잠시 함께 지냈는데, 그녀의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 떠들썩한 주말 밤을 보내기로 했다.

내가 떠날 시기가 되었을 무렵, 룸메이트들에게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팟 락(Potluck) 형태로 각자 음식을 준비해 와 함께 나누어 먹었다. 터키 케밥, 한국 김밥, 파스타 등 다양한 음식이 식탁에 올랐다. 까다로워 보였던 중국 룸메이트는 스타벅스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사 와 혼자 그것만 먹었다. 우리는 연락처를 주고받았고, 연말과 새해 인사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평범함 속에서 배우는 것


그들이 특별히 그립거나,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아니다. 다만,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나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나 환경을 떠나 동등하게 교류하는 경험이 얼마나 드문지 깨달았다. 그들과의 만남에서 특별한 깨달음을 얻은 건 아니지만, 밥늦은 소음에 짜증이 났던 순간들마저도 지나고 나면 의미 있게 남는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들과 평범한 일상을 함께 보낸 경험은 내 문화적 지능을 확실히 높여주었다. 지금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사회 생활속에서, 그 시간이 내게 자양분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들과의 시간은 어쩌면 그 평범함 덕분에 더 소중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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