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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우연처럼 시작된 MBA

by Lucia

6개월간 사귀었던 남자 친구와 한국과 홍콩을 오가며 장거리 연애를 잘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오해였다. 그의 마음이 변한 건 아니었지만, 장거리 연애 자체가 버겁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밤 늦도록 울고, 이야기하고, 걸으며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헤어진 뒤 돌아온 홍콩은 온통 슬픔으로 가득 찬 공간처럼 느껴졌다. 햇살이 따사로운 주말 낮에도 침대에 누운 채 몇 시간씩 울었다. 카카오톡의 라이언 이모티콘처럼, 눈물이 바닥을 적실 정도였다. 내 모습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슬픔을 감춘 채 출퇴근을 하고, 새로운 환경과 업무에 적응해 나갔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이 감정을 돌파할 무언가가 간절했다. 슬픔을 잊을 만큼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그러다 문득 결심이 섰다. ‘홍콩에서 대학원을 가야겠다.’ 지금도 그 결론이 왜 나왔는지는 스스도 설명하기 어렵다.


대학생 때 미국 교환학생을 준비하며 토플을 공부한 적이 있다. 그 때 외국 대학원에 진학하려면 GRE 시험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진학이 확고한 목표는 아니었지만, GRE 단어장을 보며 잠시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시험을 보기도 전에 흐지부지되고 포기했다.


목표는 시작의 전제 조건이다. 목표가 생기면 비로소 행동이 따라온다. 이번에는 달랐다. ‘MBA 진학’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알아보니 MBA에는 GRE가 대신 GMAT 점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가 편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일단 부딪혀 보자는 마음으로 GMAT 학원에 등록했다. 그 시험은 시간과 돈을 많이 욕하는 고난도 시험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그 사실조차 잘 몰랐다. 결국, 간신히 커트라인 점수를 넘겨 합격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시험에 대한 충분한 정보 없이 시작했기에 용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홍콩 과학 기술대학교(HKUST) MBA 과정을 시작했다. 한국과 달리, 이곳은 졸업 연도가 아닌 입학 연도로 학번을 표기했기에 나는 ‘In-Take 2014’였다. 학기 시작 전,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Clear Water Bay 캠퍼스를 찾았다. 드넓은 바다와 섬을 마주한 캠퍼스는 답답했던 마음을 탁 트이게 했다. 아시아, 유럽, 남미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동기들과 만날 생각에 설렘과 긴장감이 교차했다.


오리엔테이션 장소를 잘못 찾아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방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스페인에서 온 다니엘이었다. 같은 이름의 홍콩 친구가 있어, 우리는 그를 ‘파파 다니엘’이라고 불렀다. 옥상에 위치한 오리엔테이션 장소로 향하면서, 어떻게 영어로 인사를 건넬지 혼잣말로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첫 대화 상대는 캐나다 출신의 버나드였다. 유창한 영어와 친절한 태도로 나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대학교에서 패션을 전공했을 땐 모둔 수업이 즐거웠지만, MBA 첫 학기의 회계 수업은 충격 그 자체였다. 강의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얼굴이 붉어지곤 했다. 홍콩에서는 고등학교 과정에 회계 과목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도 그 때 처음 알았다.나느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시작했고, 퇴근 후엔 동기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교수님과 조교의 도움까지 받으며 간신히 과제를 해냈다.


싱가포르 친구 홍킷과 중국 친구 베론, 홍콩 친구 레이몬드와 로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지금은 회계나 경제 수업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지만, 함께 고민하고 토론했던 순간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협업했던 경험은 여전히 선명하다.


MBA를 통해 얻은 진정한 자산은 바로 ‘사람’이었다. 나와 다른 ‘너’를 이해하고, 때론 인내하며, 함께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가는 과정. 이것이야말로 조직 생활에서 필요한 태도라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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