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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드래곤 보트

by Lucia

드래곤 보트(Dragon boat)? ‘용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한다. 짧은 영상이나 사진을 보여주면 그제야 ‘아~ 이거’라며 익숙한 표정을 짓는다. 용선은 용을 형상화한 배를 타고 하는 믈 위를 가르는 수상 스포츠로, 20명의 선수가 북소리에 맞춰 하나 된 동작으로 노를 젖는 경기다. 2010년 아시아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전해 내려오는 유래에 따르면, 중국 초나라 사람들은 충신 굴원이 강에 투신해 생을 마감하자,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겨 그를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배를 저었다고 한다. 그러나 끝내 종적을 찾지 못했고, 이를 기리기 위해 매년 5월 5일 용선을 저어 물고기를 쫓고 굴원의 시신을 보호하는 의식을 치르기 시작했다.그렇게 종교적 의미에서 비롯된 제사 의식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오락적인 경기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나는 역사나 인문학에 박식한 편은 아니지만, 현지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피부로

느껴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그러던 중, 홍콩 과기대 MBA 동문회에서 드래곤 보트팀의 신규 멤버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홍콩에 살면서 한번 쯤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펴일에는 회사 업무, 주말에는 MBA 수업과 과제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몇 달만 조금 더 부지런하게 살아보자며 스스로 동기부여를 했다.


드래곤 보트 훈련은 매주 일요일 이른 아침에 진행되었다. 아침 7시 전에 집을 나서야 했기에, 친구들과 토요일 밤을 유쾌하게 보내고 나면 그다음 날의 훈련은 꽤나 괴로웠다. 그래도 스스로 한 약속은 지키기로 했다.


다양한 기수의 MBA 동문들이 모였다. 나이도, 학번도, 국적도, 머리색과 눈동자 색도 제각각인 사람들이었다. 두세 달 후 열릴 경기를 위해 스무 명, 마흔 개의 손이 일심동체가 되기 위한 여정을 함께했다. 매년 이 경기에 출전한다는 멤버도 있었는데, 몇 달 헬스장에서 만든 근육과는 결이 다른, 실용적인 탄탄함이 몸에 베어 있었다.


훈련을 이끈 코치는 흰머리가 성성한 홍콩 할아버지였는데, 30대 남자보다 더 단단해 보이는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코칭 아래 매주 일요일 아침, 우리는 로잉 동작을 반복 연습했다. 나는 코치의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의 눈빛과 제스처에 집중하여 마치 통역이라도 된 듯 따라갔다. 특히, 상체 근력이 부족한 여자들에게 로잉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노를 머리 위로 들어 공중에서 허우적 대는 자세만 여습해도 팔과 승모근이 단단히 지쳐갔다. 공중에 노를 드는 것도 버거운데, 과연 물살을 가르며 노를 젓는 일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연습용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날, 찰랑이는 파도 위에 몸을 실었을 뿐인데도 설레었다. 2018년 중국에서 드래곤 보트 연습중 배가 뒤집혀 전원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머릿 속을 스치기도 했지만 , 두려움보다 설렘이 앞섰다. 고층 아파트들이 해안선을 따라 줄지어 늘어서 있고, 파란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을 향해 노를 젓는 느낌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귀를 소치는 바닷 바람 외에는 이 세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팔 근육은 피로를 호소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도 평온했다. 우리는 어느덧 한 팀이 되어 있었다.


6월 18일, 드디어 경기 당일이 되었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 위엔 긴장감과 흥분이 공기처럼 떠다녔다. 경기는 불과 1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 짧은 순간을 위해 수백 명이 오랜 시간 훈련을 해왔다. 우리는 홍콩 과기대 로고와 용이 그려진 유니폼을 입고 해변에 모였다. 사람들의 팔과 허벅지만 까맣게 탄 모습이 웃기면서도 인상 깊었다. 발 디딜 틈 없는 해변에서 우리는 동그랗게 모여 마지막 파이팅을 외쳤다. 국가 대표가 아니더라도, 모든 경기는 언제나 비장하다.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대부분의 경기는 두 번째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쿵! 쿵! 쿵! 북소리가 울렸다. 우리 팀의 북잡이는 키 작은 홍콩 여자였다. 그녀는 마치 지휘자처럼 북을 두드리고, 외침으로 리듬을 잡았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을 증명하듯, 그녀의 까랑까랑한 목소리에는 에너지가 넘쳤다. 스무 명, 마흔 개의 손이 하나의 마음으로 움직였다. 북소리에 맞춰 노르 저으며 힘껏 앞으로 나아갔다. 40초, 짧지만 강렬한 시간, 하늘을 뚫을 듯 울리던 북소리와 물살을 가르던 노의 리듬이, 몸속까지 파고들었다. 물을 퍼올리며 흩날린 바닷물은 우리 몸 위에 그대로 튀었고, 우리는 땀과 바닷물에 젖은 채로 마무리했다.


끝났다. 결과와 상관없이 모두가 웃었다. 서로 격려하며 해변의 공기와 함성을 맘껏 즐겼다. 상을 받았지만, 어떤 상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 상의 순위나 종류가 우리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유쾌하게 뛰쳐나가 기념 사진을 찍었고,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하얀 이가 도드라져 장난기 넘치는 모습으로 남았다. 인생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한 장면이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언제고 이 친구들을 다시 만나도 하이파이브하며 반가워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꼭 다시 해보고 싶다. 50대가 되어 다시 드래곤 보트를 도전하는 멋진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언젠가 인스타그램에서 이제 막 경기를 끝낸 한 격투기 선수가 말했다.


“오늘,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맛봈어. 진짜 행복해. 왜나면, 이런 순간을 앞으로도 한번 더, 그리고 더 많이 가질 수 있을 거니까. 당신들도 인생에서 단 한번쯤은 이런 순간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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