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어릴 적부터 내 선망의 도시였다. 대학생이 되면 꼭 유럽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갓 스무 살이 된 나는 그런 여행을 감당할 경제적 여력이 없었다. 결국 부모님께 당연하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엄마, 나 유럽 여행 가고 싶어. 돈 좀 주세요.”
지금 생각하면 참 철 없던 시절이다. 물론 그 당시엔 중요한 경험에는 타이밍이 있다는 나름의 변명을 내새우며, 그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된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타임 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은혜는 꼭 갚겠다는 말 정도는 하고 싶다.
스물한 살, 처음 마주했던 런던의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친구와 함께 ‘런던 아이’ 앞 초록 잔디가 펼쳐진 공원에 앉아있던 그날 내 모습은 지금보다 어설펐고 옷차림도촌스러웠지만, 그 순간은 빛났다. 마침 햇살 좋은 날씨까지 겹쳐, 공원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우리는 엽서 속 풍경 한가운데 있었다. 너무나 행복했다. 공원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반짝이던 스물 한 살 우리의 눈빛이 떠오른다.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 들려주고 싶은 말도 많다. 무모했지만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다녀온 그 여행은 내 인생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고,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가끔식 무모할 예정이다.
십여 년이 지나 다시 런던을 찾았다. 이번엔 홍콩 MBA 과정 중 교환 학생 자격으로 런던 비즈니스 스쿨(LBS)의 문을 두드렸다. 고급 주택가와 작은 공원이 어우러진 캠퍼스를 처음 방문했 때, 새로운 모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백 팩을 메고 한 손엔 커피를 든 채 도시 중심을 가로질러 캠퍼스로 향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스스로 흐뭇해했다. 내가 머무르게 될 집의 열쇠는 해리 포터 영화에나 나올 법한 오래되고 묵직한 열쇠 꾸러미였다. 투박하지만 그 열쇠를 소중히 챙기며 런던에서의 흥미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룸메이트는 홍콩 MBA 동기였던 킴Kym이었다. 싱가포르 출신이지만 오랜 홍콩 생활 덕분에 싱글리쉬 억양은 심하지 않았다. 그녀의 똑 부러진 말투는 감성보다는 이성적인 인상을 주었다. 킴과 처음 함께 갔던 런던의 슈퍼 마켓은 내게 신세계였다. 어린아이가 장난감 가게 앞에 선 겉 같은 설렘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빵과 씨리얼, 뚱뚱한 우유통, 커피, 오렌지 주스까지 준비해 호텔 룸서비스처럼 근사한 아침상을 차렸다. 정성을 가득 담은 아침 식사는 특별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토록 공들인 식사는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는 캠퍼스 내 작은 카페에서 초코 크루아상과 아메리카노를 사들고 강의실로 향하는 소소한 즐거움으로 만족했다. 물론 매일 즐기기엔 런던의 물가는 꽤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캠퍼스 근처에서 맛도 좋고 영양도 훌륭한 케밥 가게를 발견하고는 ‘여기다,’! 싶었다. 자주 이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케밥 한 끼 가격이 15파운드, 당시 환율로는 약 2만 5천원. 그제야 런던의 높은 생활비가 피부로 와닿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더 경제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졌다.
조금이라도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다른 동네를 구경하러 나섰다. 학생이라 할인 받을 수 있는 오이스터 카드를 구매해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편도 요금이 5파운드, 한화로 약 8,500원. 그 뒤로는 왠만한 거리는 부조건 걸어다녔다. 런던에서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돈이 흘러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런던 생활은 인생 처음으로 수입 없이 지출만 하는 삶이었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듯했고, 통장 잔고는 점점 줄어들었다. 결국 어느 날, 홍콩에 있는 친구에게 울컥한 마음을 안고 전화를 걸었다. 그 시기의 불안감과 혼란은 내게 아주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돈을 대하는 태도와 경제적 가치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다.
“인심은 곶간에서 나온다” 라는 말이 있다. 여유가 없으니 룸메이트인 킴과의 관계도 조금씩 소원햊ㅆ다. 말투도, 생각도 어긋나기 시작했다. 서로의 음식을 먹어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우리는 점점 유치해졌다. 런던의 월세는 한국과 달리 주 단위로 계산된다. 한 주, 한 주 비용을 지불하며 살아가다 보니 경제적 압박감은 더욱 실감났다. 내가 런던에 머물 기간과 최소한의 생활비를 계산해 보니, 하루에 쓸 수 있는 돈은 고작 5파운드였다. 요즘 유행하는 ‘간헐적 단식을 실천하면 생활비를 더 줄일 수 있을까?’ 같은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홍콩에선 일정한 수입이 있었지만, 나는 돈 관리에 무지했다. 남는 돈을 저축하는 방식이었기에, 통장은 늘 빈약했다. 수입 없이 지출만 있는 삶은 생각보다 훨씬 버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행을 택한 건 현명한 선택이었을까? 후회는 없다. 중요한 건 그 시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결국 나는 장사였는지 여부다. 런던에서의 시간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현실은 인정하고, 그 안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법. 그리고 그 시절의 고민과 좌절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갸야 할지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