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
나의 커리어 여정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준 상사의 이름을 꼽으라면, 단언 ‘코디’가 떠오른다. 코로나로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기, 나는 홍콩 대신 한국에서 제택근무를 했다. 그 사이, 코디는 회사를 떠나 미국 L.A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제대로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채 이별했다. 많은 이들이 그랬듯, 코로나는 중요한 작별의 순간마저 빼앗아 갔다.
홍콩에서의 내 커리어와 삶에 강한 영향을 준 그를 언젠가 미국에서 꼭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그와 연락이 닿으려면, 그의 비서였던 카르멘에게 먼저 연락 해야 한다. 카르멘은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대만 여성이다. 물론 그 나이는 내 추측일 뿐이다. 수년간 그녀를 포함해 싱가포르, 프랑스 등 다양한 국적의 동료들과 일했지만, 나에게 나이를 묻는 이는 없었다.
카르멘은 늘 단정하고 흐트러짐 없는 사람이었다. 항상 풀 메이크업을 하고, 중국 전통 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화려한 옷을 자주 입었다. 비서라는 역할 때문인지 화려함 속에도 절제된 단정함을 갖추고 있었다. 그녀의 영어는 원어민 수준은 아니었지만, 홍콩어와 중국어, 영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었기에 미국인 코디의 비서로 일할 수 있었다. 언어 능력은 업무 능력과는 별개로 분명한 강점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오래전 코디와의 인터뷰를 위해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였다. ‘패왕별희’ 주인공이 떠오를 만큼 날렵한 화장이 인상 깊었다. 정갈한 말투와 몸짓, 전문적인 태도도 기억에 남는다. 몇년 뒤 다른 회사 사무실에서 그녀와 재회했고, 이후 몇 해 동안 함께 일했다. '푸하하하하!' 소리를 내며 웃던 그녀와는 한국 문화와 음식에 대해 시시콜콜한 대화를 자주 나눴다. 우리는 친밀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순간부터 이상한 기류가 감지됐다. 내 맞은편 대각선 자리에 앉은 카르멘이 모니터를 응시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혼잣말이었지만, 모두가 듣기를 바라는 그런 말투였다. 나는 홍콩어를 전혀 모르지만, 나에 대한 이야기라는 직감이 들었다. 악담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였다. 그 후 1년간 그녀는 나를 힘들게 했다.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처럼 보이려 했지만, 이전까지와는 달리 대했다. 우리는 그렇게 최소한의 대화만 주고받았다. 눈빛과 말투는 차가웠고, 나눈 이유도 모른채 그 시간을 버텼다. 내가 무례한 언행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해를 끼친 적은 없었다. 이게 ‘은따’인가 싶었다. 굳이 묻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부정적인 감정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내 에너지는 조금씩 소진됐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대화를 시도해볼까 고민했지만, 시도하지는 않았다. 그런 대화자체가 유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여고 시절 어린 누군가의 감정 싸움 같았다. 내가 누군가의 시샘을 살 행동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코로나가 지나면서 외국인 동료들이 떠났다. 어느새 나는 사무실에 남은 몇 안 되는 외국인이었다. 홍콩은 다양한 국적과 인종이 어우러진 도시지만, '외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내게 약자의 자리를 인식하게 만들었다. 영어도 모국어처럼 유창하지 않고, 중국어도 할 줄 모르는 나는 어중간한 위치의 외노자일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카르멘과의 대화를 피한 본질적인 이유는 내 스스로가 약자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현실을 직면하기 싫어서 회피를 택했는지도.
‘은따’는 왕따보다는 나은 것까. 정신적 고통은 비슷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모든 동료들이 그녀의 행동에 동조하지는 않았다. 다른 홍콩 동료들은 예전처럼 나를 대해줬고, 그녀가 험담을 늘어놓아도 가세하지는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동료들은 성숙하고 괜찮은 사람들어이었다.
코디 역시 우리 사이의 불편함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런 말이나 행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일관된 태도를 유지했고, 때로는 일부러 더 웃고 떠들며 아무렇지 않은 척지냈다. 그 시절의 내가 조금 짠하다.
얼마 전 출장길 비행기 안에서 일본 영화 몬스터(Monster)를 봤다. (송강호 주연의동명 영화가 아닌, 2023년 일본 영화다). 제목이 주는 어두운 인상 때문에 미루던 영화였지만, 막상 보니 일본의 평범한 마을과 사람들 이야기였다. 아이들의 학교 생활과 선생님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과장된 장면 없이도 영화는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나는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 감정이 차오르고, 가슴이 먹먹했다. 네이버 리뷰를 읽다 보니,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이들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내가 사실을 봤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사실만 본 것일지도모른다. 타인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하는 내가 괴물일지도 모른다.”
“사실은 단편들이고, 시선이 괴물이 된다. 괴물은 없었다. 괴물이라 믿고 싶은 시선만 있을 뿐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카르멘은 어느 순간 나를 싫어했고, 나는 애써 예의 바른 태도를 유지했다. 시간이 흐르자 그녀는 다시 예전의 카르멘으로 돌아왔다. 오해가 풀렸던 걸까. 나는 여전히 그 이유를 모른다. 코디가 회사를 떠나 후, 그녀도 퇴사했다. 마지막 날, 우리는 따뜻한 포옹으로 작별했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조금 더 성숙하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