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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홍콩에서의 새로운 생활 시작

#외노자게시

by Lucia

지난 밤, 침대에 누워 수십 개의 릴스 영상을 넘기던 중, 알고리즘이 추천한 ‘한국 외노자의 생활’이라는 포스트가 피드에 떴다. 한국에서 일하며 생활하는 인도계 20대 여성의 한국 음식 먹방 영상이었다. 그녀가 매운 묵은지 김치찜을 맛있게 찢어 먹는 모습, 짜파게티 위에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 장면은 흥미롭고 유쾌했다. 7~8년간 홍콩 직장인으로 지낸 내 30대의 모습이 겹쳐졌다. 나 역시 홍콩 국수로 면치기 좀 하는 편이었다.

‘외노자’라는 단어는 어딘가 고단하고 외로운 삶의 무게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엔 낯선 세계를 향한 설렘과 긴장감도 함께 있다. 나 역시 홍콩으로 떠날 당시, 걱정 보다는 설렘이 컸다. 행동이 앞서는 내 성향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홍콩행을 고민할 때, 주변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서른 중반이 넘어 외국으로 떠나면 결혼 시기를 놓친다는 우려도 있었다. 놀랍게도 그 걱정은 어른들 뿐 아니라 내 또래 친구들에게서도 들려왔다. 단 한 명의 친구가 말했다. “홍콩 가서 네 반쪽을 찾으면 되지!” 그 말에 용기를 얻었다.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더 멀리, 더 즐겁게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다니던 회사에선 업무 확장과 팀원 관리 기회를 제안했다. 안정적인 제안을 뒤로하고 불확실성 가득한 홍콩행을 택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다양한 조언을 듣되 결국 자신의 확신을 따라야 한다. 인생에 두 번째 라운드는 없으니까.

홍콩에서의 삶이나 직장 생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블로그나후기조차 찾아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나는 확신이 들었다. 이 선택이 내 인생의 새로운 문을 열어 줄 것이라는 직감이 있었다. 때로는 이성적 판단이 아닌 직감에 따른 결정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 법이다. 이민 가방 두 개를 들고 떠나와, 완차이(Wan Chai) 지역의 레지던스 아파트에서 한 달을 지냈다. 전통 시장과 글로벌 기업이 공존하는 활기찬 동네였다. 첫 출근 날, 시장을 가로질러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는 내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홍콩에서 살 집을 찾던 중, 70층 원룸도 보았다. 창밖 풍경은 마치 비행기 안에서 바라보는 듯했고, 매일 하늘 위에 누워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시에 생기지도 않던 고소공포증이 생길 것 같았다. 열댓 군데의 집을 보고 좌충우돌 끝에 부동산 계약을 마쳤고, 본격적인 외노자 생활을 시작되었다.

홍콩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도 친구로 남은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스쳐간 인연이었다. 그러나 짧은 만남 속에서도 그들은 내게 자국을 남겼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무난했지만, 홍콩은 그렇지 않았다. 나를 배척하는 이도 있었고, 인간 관계의 큰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자주 혼났고, 보고서가 부족하다는 질책도 받았다. 체력적으로, 심리적으로 지치며 매일 늦은 밤 밥을 산더미처럼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첫 ‘번아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콩은 나에게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지닌 사람들과 어울렸고,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과 교류하며 시야가 넓어졌다. 생각의 깊이와 폭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얼마 전 주말, 2박3일 일정으로 홍콩에 다녀왔다. 센트럴 역에서 ‘Have friends in different languages’라는 광고 문구가 눈에 띄었다. 내 아이가 자라면 꼭 해주고 싶은 말 중 하나다. 다른 언어를 쓰는 친구를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넓은 세계를 품는 일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같은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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