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똑같은 26동작의 반복
사회 생활을 시작한 20대 중반,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마음도 쉽게 지치는 것을 느꼈다. 바쁜 일상에서 중심을 잡아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 무렵, 학동사거리 근처의 대형 피트니스 클럽을 찾게 되었다. 노란 외벽에 킹콩이 달린 외벽이 인상적인 그 곳은 다섯 개 층이 모두 운동시설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이전까지는 대학 캠퍼스 근처의 월 3만원 짜리 작은 헬스장을 다닌 것이 전부였기에, 그 규모에 압도되다시피 했다.
처음 방문했을 때, 상담을 맡은 컨설턴트가 열정적으로 권한 수업은 바로 비크람 요가였다. 찜질방처럼 뜨거운 방에서 진행된다는 설명에 순간 망설ㅇㅆ지만, 체험 수업이 무료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낯선 이름과 더불어 생소한 조건, 하지만 뭔가 새로운 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뒤섞인 채 첫 수업에 들어갔다.
비크람 요가는 38-40도의 고온 환경에서 90분동안 26가지의 정해진 자세를 두 번씩 반복하는 강도 높은 요가다. 찜질방처럼 후끈한 방 안에서 고정된 동작을 반복하는 동안, 숨이 턱 막히고 몸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땀은 줄줄 흐르고, 순간순간은 생명이 위협받는 느낌까지 들었다. 수업이 끝난 뒤, 나를 체크하러 온 컨설턴트에게 ‘이건 나랑 안맞는 운동이에요.“ 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헐떡거리는 숨을 진정시키고 도망치듯 그곳을 나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날 이후 몸이 자꾸 그 열기를 기억했다.’도대체 왜 이렇게 힘들었지? 내가 뭘 놓친 걸 아닐까?‘ 싶어 다시 수업을 들어갔다. 그렇게 두세 번을 더 참여했고,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비크람 요가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처음엔 원망스러웠던 그 컨설턴트가 이제는 감사한 사람이 되었다. 내 요가 인생의 첫 걸음을 열어준 사람이었으니까.
그 후 약 5년간, 나는 비크람 요가를 정기적으로 수련했다. 지인들에게도 권유해 함께 체험하게 했고, 일부는 장기 회원이 되어 요가에 빠져들었다. 다단계 직원처럼 보일까 걱정도 되었지만, 요가가 준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요가는 내게 단순한 운동 그 이상이었다.
비크람 요가는 항상 동일한 구성이지만, 수업을 이끄는 선생님마다 스타일이 달랐다. 어떤 이는 마치 전투를 이끄는 장군처럼 파워풀했고, 어떤 이는 책을 읽어주듯 차분하게 진행했다. 목소리가 작다고 카리스마가 없는게 아니었다. 오히려 조용한 목소리 속에서 더 깊은 집중을 끌어내는 에너지를 느꼈다. 그 에너지는 매 수업마다 달랐고, 그래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요가에 대한 관심은 국내를 넘어 해외로도 뻗었다. 푸켓에서 비크람 요가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친구 혜영이와 함께 그 곳을 찾았다. 그 선생님은 수십 년간 요가를 수련한 분으로, 보디빌더처럼 역삼각형의 탄탄한 몸을 지니고 있었다. 그 곳에서 매일 요가를 수련하고, 남은 시간은 해변에서 보내며 보낸 그 여름은 지금도 가슴 깊이 남아 있다.
요가실에는 한쪽 벽을 가득 채운 거울이 있다. 그 거울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나를 마주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수련 초창기엔 거울에 비친 내 땀범벅의 모습이 민망했고, 옆구리 살이나 배가 접힌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 숨고 싶어졌다. ’혹시 다른 사람들이 이걸 볼까‘ 하는 생각에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됐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호흡과 자세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요가 수업 동안은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해야 한다. 거울 속 나와 아이컨택하며,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어쩌면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남의 시선보다 중요한 건, 흔들림 없이 나를 바라보는 힘이다.
한 때 수련하던요가 센터가 부도로 문을 닫았을 때, 금전적 손해를 보았다. 하지만 금전보다는 일상의 균형을 잃는 듯한 허탈감이 컸다. 다행히도 선생님 몇 분이 힘을 모아 새로운 센터를 열었고, 예전 회원들이 다시 모였다. 나는 평일 아침 새벽 수업에 참여했고, 가끔은 선생님과 단둘이 수업을 하기도 했다. 어두운 새벽, 창밖이 서서히 밝아오고, 송글송글 맺힌 땀과 함께 나도 다시 깨어났다. 그 시간은 단순한 운동 그 이상의 의미였다. 스스로를 다시 깨우는 의식과도 같았다.
요가센터에서는 ’30일 챌린지‘ ’60일 챌린지‘도 열었다. 주어진 기간동안 매일 빠짐없이 수련을 하는 도전으로, 말처럼 쉽지 않다. 나 또한 30일 챌린지를 완주했다. 매일 요가를 하고 난 뒤의 내 몸은 가볍고 깨끗했다. 공허함이 아닌, 정제된 공기로 채워진 느낌이었다. 어떤 날은 수업을 두 번 연속으로 듣기도 했다. 두 번 째 수업중엔 오히려 몸이 더 가볍게 느껴졌고, 동작이 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운동은 에너지를 소모하지만, 요가는 내 안의 에너지를 축적하는 행위였다. 그 감각은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렇게 비크람 요가를 시작으로, 빈야사, 하타, 아쉬탕가 등 다양한 요가를 경험했다. 강도도 호흡도 스타일도 다르지만, 본질은 같았다. 요가는 나를 마주하게 하고, 정화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에겐 그런 시간이 명상이거나, 혼술 혹은 불멍일 수도 있다. 형태는 다를지라도, 우리는 모두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나를 정돈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충전할 수 있는 고요한 순간. 요가는 내게 그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