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어쩌라고
내가 가진 옷 중에 가장 멋스럽다고 생각한 레이온 셔츠를 입었다. 일자 라인이 똑 떨어지는 울 코트도 걸쳤다. 낯선 건물의 계단을 통통 뛰어 올라가며, 스스로 발랄해 보이길 바랐다. 3층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퇴근 후 저녁 시간, 새로운 회사의 면접을 보기 위해 들어서는 길이었다. 사무실 입구 문을 당차게 열며, 내 모습이 당당하게 보이길 바랐다.
사무실 전체는 온통 회색이었다. 마치 마감이 덜 된 건물의 외벽처럼 삭막하게 느껴졌지만, 나름 쿨해 보였다. 그게 인테리어 콘셉이라고 추측했다. 텅 빈 사무실을 가로질러 제일 안쪽 미팅룸으로 향했다.
항상 허리를 곧게 펴고 일할 거 같은 인상의 인사팀 이사님이 눈웃음으로 나를 맞았다. 미소도, 외모도 매우 정제된 인상이었다. 회색 외벽, 하얀 책상, 군더더기 없는 미팅 룸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옆에는 사업본부장 이사님도 있었다. 책상 모서리 쪽에 의자를 뒤로 빼고 다리를 꼰 채 캐주얼하게 앉아 있었다. 뭔가 딱딱한 규율을 중시하는 분은 아닐거라는 섣부른 판단이 들었다.
어떤 질문과 대답이 오갔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에서 내가 꽤 똑똑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했다는 건 기억난다. 사업본부장 이사님이 회계법인 출신이라고 들은터라, 숫자를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포장해서 답변했다.
머천다이저(MD)는 어떤 스타일의 상품이 매장에 들어갈지, 각 스타일 별 수량은 얼마로 할지 정한다. 판매 분석도 꼼꼼하게 해야 하고, 디테일한 데이터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큰 크림을 놓칠 수도 있다.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을 모두 잘 보는 MD도 있겠지만, 당시 경력이 짧았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떤 스타일이 잘 판매되는지는 정혹히 분석했지만, 시즌 전체 예상 판매율이 얼마인지, 그에 따라 얼마만큼 오더를 넣어햐 하는지는 조금 버거운 질문이었다.
멋스럽게 입은 레이온 셔츠가 통기성이 떨어졌던 걸까, 아니면 내가 지나치게 긴장 했을까. 셔츨 속으로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던 땀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큰 그림은 못보면서 큰 그림을 잘 보는 사람처럼 답변하려 했던 그 순간, 등줄기를 타고 찌익 흐르던 땀이 내 스스로의 뜨끔함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면접을 마친 뒤, 회색 외벽의 멋진 건물에서 일하게 되었다. 세미 정장을 새로 사입고, 청담동으로 출근했다. 청담동에 사는 것도 아닌데, 그곳으로 출근한다는 사실이 꾀나 멋져 보였다. 사업 본부장님 아래에는 부장님, 과장님, 대리님, 그리고 인턴까지, 작지만 단단한 팀이었다. 회계 법인 출신의 본부장님은 A3 한 장 가득 데이터를 분석해 팀에 공유했고, 연륜 있고 따뜻한 부장님은 매출을 검토하며 매장 리뉴얼과 신규 입점을 관리했다. 뉴욕 새편 스쿨 출신의 과장님은 시즌 별 오더와 판매 분석을 담당했다. 나는 팀의 의사 결정에 필요한 세일즈 리포트를 만들었다.
매 주 월요일 아침 제출해야 하는 리포트 양이 만만치 않았다. 하짐나 그런 심리적 부담감을 팀에 보이고 싶지 않았다. 주말에 미리 작업해 두기도 했고, 월요일 꼭두새벽에 회사로 출근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정시 출근한 것처럼 여유롭게, 1분 간격으로 이메일을 3-4통에 나눠 리포트를 전송했다. ‘일 잘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실제로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칭찬은 여전히 고래를 덩실덩실 춤추게 한다.
물론 잘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나의 부족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났다. 사기를 친건 아니지만, 다만 보여지는 것보다 내가 부족했고, 더 배워야 한다는게 명확해졌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팀의 상사들이 줄줄이 회사를 떠났다. 본부장님, 부장님, 과장님 모두가 한두 달 사이에 퇴사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당시 나는 회사 전체의 구조나 상황을 판단할 수 있을만큼 성숙하지 않았기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위에서는 개선되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낙동강 오리알처럼 혼자 남았다.
스무 개 가까운 매장을 운영하는 팀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그 상황이 패닉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어서 이직해야겠다.’ 는 판단도, ‘이건 기회다.’ 라는 각오도 없었다. 그냥 그랬다. 둔했던 걸까, 순진했던 걸까. 그 상황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아닌데, 그냥 하고 있었다.
업무량이 늘었고, 야근도 제법 했다. 그래도 힘들다고 느끼진 않았다. 그저 ‘해야할 일이니까, 제때 하자’는 생각뿐이었다.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걸 회사의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특별히 힘들게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 시절, 회사 사무실의 천장 스피커에서는 늘 음악이 흘러나왔다. 영국 팝송이 많이 재생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가끔 야근 중, 음악이 절정에 오를 때마다 신들린 듯한 타이핑을 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마치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내리치는 듯한 타이핑. 열정적인 키보드 연주.
팀의 공백과 혼란이 매장 직원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랬다. 매장 직원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잘 케어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손편지를 써서 각 매장에 보냈다. 개인적으ᅟ골 가지고 있던 작은 선물, 간식, 사무실의 예쁜 소품들을 하나하나 포장해 편지와 함께 보냈다. 쉽지 않은 시기에 각자의 역할 이상으로 애써준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그 상황에 대해 불평하지도, 충원해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해 연말, 회사에서 ‘올해의 베스트 직원상’을 받았다. 몇백만 원대의 최고급 라인 가방도 선물로 받았다. 정말 기뻤다. 내가 버텨낸 시간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지 라는 전략적 태도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 저 그 시기를 온전히 받아 들이고, 묵묵히 통과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니, 어느새 한 뼘 성장한 내 모습과 마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