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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팝업의 모든 것

#루비월드

by Lucia


최근 한국 리테일 트렌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는 ‘카페’와 ‘팝업’이다. 한 블록이 건너마다 감각적인 카페가 줄지어 있고, 성수동에서는 매주 수십 개의 크고 작은 팝업이 열린다. 건물 임대료는 부르는 게 값이고, 하루 임대료가 천만 원을 훌쩍 넘는 곳도 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인지도가 높아 고객 유입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팝업 후 손해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 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팝업은 장기적인 투자로 여겨지며, 그 형태와 목적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카페와 팝업은 일단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본질은 같다. 바로 ‘경험’ 이다. MZ 세대에게 인기가 많은 ‘메종 마르지엘라’는 브랜드가 더 현대 서울 백화점에서 팝업을 열며, 공간의 절반 이상을 카페로 구성했다. 마르지엘라 로고가 설탕가루로 새겨진 브라우니와 커피를 즐기며, 브랜딩된 공간에서 사진을 찍고 수다를 나눈다. 이처럼 오랜 시간 머무는 고객이 많다면, 백화점 수수료와 인건비를 고려했을 때 상품 판매만으로 수익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마르지엘라 팝업 당시 매출의 절반은 카페에서, 나머지 절반은 제품 판매에서 나왔다. 제품 판매량만 보면 아쉬울 수도 있지만, 반대로 수많은 고객이 카페를 방문해 브랜드를 경험했다는 의미다. 커피 한잔을 위해 찾은 수십 배의 고객들이 브랜드에 내적 친밀감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브랜드가 인지도를 쌓아가는 과정에 있다면, 팝업은 흥미롭고 혀율적인 기회가 된다. 구매 여부와 관계없이, 고객은 브랜드와 이미 데이트 중이다.


루부탱 한국 법인의 설립이 마무리 되고, 어떻게 하면 한국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을지 밤낮으로 고민하던 중 더 현대 서울 팝업 기회가 눈에 들어왔다. 7월에 법인 설립이 완료되었고, 그 해 11월 팝업을 추진하자고 보스 프랑소와에게 제안했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던 나는 이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며 강하게 설득했다.


”워~ 워~“


말 그대로 흥분한 말을 달래듯, 보스가 나를 진정시켰다. 팝업의 중요성에는 동의했지만, 파리 본사, 홍콩 아시아 지사, 한국 백화점까지 다양한 이해 관계자가 얽힌 대규모 프로젝트를 단 3-4개월 안에 퀄리티있게 완성하기는어렵다는 것이었다. 수긍이 되면서도 아쉬웠다. 여러 조율 끝에 다음 해 1월로 팝업이 결정됐다.

예스~! 루부탱 하면 떠오르는 레드, 하이힐, 파리 같은 이미지들이 팝업 공간에 어떻게 구현될지 상상만으로도 설렜다. 파리의 테라스 카페처럼 크루아상과 커피를 즐기는 루부탱 카페도 구상해 보았다. 파리 본사 디자인 팀, 홍콩 아시아 지사, 한국 지사까지 모두 머리를 맞댔다.


존재하지 않던 무언가를 새롭게 창조하는 일, 그건 참 신비로운 일이다. 창의적인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내 삶이 풍요롭다고 생각한다. 본사 크리에이티브 팀 헤드인 사라는 영국인이지만 파리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고, 나의 보스 프랑소와는 프랑스인지만 아시아에서 20년 넘게 일했다. 국적도 사고 방식도 다른 이들이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흥미롭고 감탄스러웠다. 물론 그만큼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완성된 팝업 디자인을 드론 영상으로 처음 보았을 때의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수백 명, 수천 명의 고객이 이 공간을 방문 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팝업 첫날의 긴장감과 설렘은 지금도 또렷하다. 부디 사건 사고 없이 잘 치러지길,드라마 같은 돌발 상황은 일어나지 않길 바랐다. 오프닝 이벤트에는 가수 현아를 포함해 많은 연예인들이 참석했다. 애써 침착한 척 했지만, 연예인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라 자꾸만 시선이 갔다. 3주 동안 현장에 상주하며, 고객들의 동선과 반응을 관찰했다. 어떤 제품 앞에서 머무는지, 어디서 사진을 찍는지, 어떤 색상에 반응 하는지, 사무실에서 숫자로만 보던 데이터와는 전혀 다른, 살아 있는 정보들이었다.


오래전 구직을 위해 인터뷰를 준비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진심을 담아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지만 결과는 아쉬웠다. 후에 요기를 내어 다시 인터뷰어와 커피를 마실 기회가 만들어 졌는데, 그 때 그가 말해 주었다.

” 직접 경험한 것을 말하는 것과, 아는 척 하며 말하는 건 분명히 다르다.“


그 땐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잘 몰랐다. 그런데 이번 팝업 현장에서 오감으로 고객을 느끼고 데이터를 받아들이며, 비로소 그 말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경험의 힘, 그건 이론으로는 대신할 수 없다. 3주 간의 팝업 동안 수천 명이 행사장을 방문했다. 그 숫자는 루부탱의 전국 매장을 1년간 찾는 고객 수와 맞먹었다. 마지막 영업일, 새벽 2시가 다되어 철거가 마무리됐을 때, 나는 왠지 내가 직접 지은 성을 내 손으로 무너뜨리는 기분이 들었다.


팝업 하나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해서, 브랜드가 곧 성공을 거머쥔 것으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첫걸음일 뿐이고, 그 모멘텀을 어떻게 이어가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어쩌면, 인생도 비슷할지 모른다. 한번의 성취가 끝이 아니라, 그 흐름을 지켜내는 것이 진짜 실력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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