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8. 웰컴 투 다이내믹 코리아

by Lucia

파리 본사 사장단의 한국 방문 일정이 잡혔다. 본사 사장단 방문은 주기적으로 있는 행사지만, 매번 마음의 부담이 따른다. 특히 이번 일정은 루부탱의 한국 직진출 이후 첫 공식 방문이기에 더욱 중요했다. 본사 CEO, 인사 총괄, CFO 등 주요 의사 결정자들이 동행했고, 루부탱 브랜드 창립자까지 함께한다고 했다. 이들에게 한국에서의 시간이 좋은 인상으로 남기를 바랐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중 하나는 고객 경험이다. 누군가에 대한 첫인상은 몇 초 만에 결정되며, 그것이 평생의 이미지를 좌우하기도 한다. 브랜드와 고객의 첫 교감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본사 사장단이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방문했을 때, 그들에게 깊은 인상과 띠뜻한 기억을 남기고 싶었다.


내 집에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기존 본사 임원 방문 일정에서 벗어나 진정성 있는 경험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그 진심 어린 준비가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긍정적인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거라 믿었다. 나는 그들이 인천공항 출국장을 나서는 모습부터 상상했다. 첫 들숨으로 한국의 공기를 마시는 순간부터, 기승전결이 있는 여정을 설계하고 싶었다.


일행 중 루부탱 창립자인 프랑스인 할아버지는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었다. 그에게 아시아는 고급 휴양지 몇 곳이 전부였고, 한국에 대한 이해도는 전쟁을 겪은 분단국정도에 머물렀다. 그래서 이번 방문이 한국의 저력과 매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그는 내게 1950년 한국 전쟁 이야기를 꺼냇다. 전쟁 직후 한국의 GDP는 거의 ‘0’에 가까웠고, 남북한의 수준은 비슷했다고 했다.


”루시아, 당신은 10대와 20대를 지나며 한국이 변화하는 과정을 체감하며 성장했습니까?“

나는 잠잠시 말을 잊지 못했다. 나 역시 지구상의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그저 하루 하루를 즐겁게 보내며 자랐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사에 대한 이해 부족도 있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한국이 이제 막 개발 도상국을 벗어나려는 나라로 보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첫 방문지는 갤러리아 압구정의 루부탱 부티끄였다. 외관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그곳엔 루부탱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직원들이 있었다. 매장 매니저는 사장단의 인원 수에 맞춰 떡과 작은 선물을 준비해 두었다. 그녀의 따뜻한 환대에 본사 임원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나까지 덩달아 어깨가 으쓱해졌다. 사람들 중에는 주도적인 태도와 자발적인 행동으로 ‘역시나’라는 감탄을 이끌어 내는 이들이 있다. 갤러리아 압구저 매니저는 그중에서도 으뜸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여는 마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서울 주요 매장들을 부지런히 방문했다. 루부탱 브랜드의 핵심 DNA는 바로 행복(happiness이)이다. 밝은 컬러, 유쾌한 디자인의 유니폼을 입고 환한 웃음으로 사장단을 맞이하는 직원들은, 그 브랜드 가치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현대 백화점 판교점도 일정에 포함시켰다. 한국을 1950년대 분단국가로만 인식하고 있는 유럽인들에게, 최첨단 테크노밸리 한복판에 자리 잡은 현대 한국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다. 백화점 내부의 동종 브랜드들을 보는 것도 중요했지만, 주변 상권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표정까지 기억에 남기를 바랐다.


레드솔 슈즈를 신은 멋진 프랑스 사장단도 결국 시차를 이길 순 없었다. 졸음을 참아가며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몇몇은 컨디션 조절을 이유로 저녁 식사를 간단히 하고 자리를 뜨겠다고 했지만, 결국 전원 2시간 넘는 바비큐 식사 자리를 함께 하며 유쾌한 웃음과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 일정을 마치고, 사장단은 이웃 나라 일본으로 이동했다.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라는 제목의 폴더로 한국에서 찍은 사진들을 공유했다. 레드솔 코리아 패밀리가 준비한 진심 어린 짧은 메시지도 함께 전했다. 지금은 루부탱을 떠났지만, 본사 사장단과 함께했던 그 시간과 에너지는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때때로 강한 감흥이 일어나는 만남이 있다. 전기 스파크가 튀듯,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는 순간이 있다.


본사 사장단은 신생 법인의 한국 직원들을 만나며,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그들의 에너지와 표정, 바디랭귀지를 통해 진심과 가능성을 느꼈을 것이다. 동시에 한국 직원들역시, 본사 임원들의 카리스마와 품격에서 많은 것을 체감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들의 그들과 강한 악수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내 에너지가 급속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그들의 눈빛에서 전해진 응원과 신뢰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은 흔히 주는 만큼 받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믿는다. 진심을 다한 자발적인 최선은, 종종 몇 배의 신뢰로 돌아오고, 감정적 충만함과 성취감으로 보상받는다는 것을.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8화3-7. 코리아지사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