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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w Jul 22. 2022

옷장 속 묵혀있던 옷들을 정리하며 발견한 뜻밖의 것들

변화에 관한 고찰




미국에 온 뒤 영주권을 받기 전까지는 언제 다시 한국에 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또 해외살이 1인 가구로서 넉넉지 않은 공간을 핑계로. 옷장 정리를 거의 하지 못- 아니 사실 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동고동락한 시간과 비례해 옷은 티끌 모아 태산처럼 점점 불어났다. 그러다 보니 매일 손이 가는 옷들과 몇 년간 한두 번 입었을까 말까 한 옷들이 서로 뒤섞여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특히 바쁜 아침 출근 전, 각개전투하고 있는 옷들 탓에 입고자 했던 옷을 찾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지난 주말, 입지 않는 옷을 빈티지 마켓에 팔기 위해 옷장 정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싹-다 처분해야지 했던 처음 마음과 달리, 막상 옷장 정리를 시작하니 괜한 미련에 머뭇거리게 되는 것이었다.


블랙프라이데이 때 50% 세일에 혹해 구입한 데님 팬츠

한 번도 입지 않았음은 물론이요, 아직 떼지 않은 브랜드 태그가 달랑- 달린 채로 청바지는 옷장 속에서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있었다.

'왠지 손이 잘 가지 않는 디자인이야. 그래도 소재가 부드럽고 컬러도 예쁜데.'


보석 버튼이 장식된 데님 크롭트 재킷

온라인 쇼핑몰 속 매력적인 모델 사진에 이끌려 구입했지만, 모노톤의 심플한 옷을 주로 입는 내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좀 화려하긴 하지만 크롭트 디자인은 마음에 드는데.'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H라인 린넨 스커트

20대 땐 치마를 주로 입었지만 지금은 거의 입지 않는다. 특히 미니스커트는 더더욱. 무언가 불편하고 어색함이 든다.

'하지만 클래식한 디자인에 컬러가 흔치 않으니 놔두면 언젠간 입지 않을까?'



이외에도 20대 때와 달라진 스타일로 더 이상 입지 않는 옷- 화려한 세일 사인에 홀려 충동구매한 옷- 막상 사놓고 손이 잘 가지 않아 한두 번 입었을까 말까 한 옷까지.


수많은 옷들이 옷장에서 뒤엉켜 구해줘- 를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런 옷들을 한 장씩 한 장씩 꺼내어 보다 보니 자신들이 팔리지 않아야 할 이유를 저마다 내게 말하는 것 같아 미련이 남는 것이었다. 옷장 냄새가 밴 꾸깃한 옷들을 한 장씩 펼치니 그 속에 고이 접혀있던 추억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그 옷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꿈 많던 20대 시절이 보였다.

'뉴욕에서 인턴십 했을 때 소호 거리에서 샀던 원피스네. 그때 참 좋았었는데.'

'대학생 때 쇼핑몰 운영했을 때 도매시장에서 사입한 옷들이 많구나. 그때 그 열정은 내게 지금 얼마큼 있나?'


그리고 잠시 고개를 돌려 요즘 즐겨 입는 옷들을 보니 달라진 지금이 보였다. 크게 유행을 좇지 않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편안하면서도 심플한 옷들이 대부분이었다.

'편안하면서도 모노톤의 심플한 옷이 좋아. 자연스럽고 나답게 느껴져.'

'대놓고 드러나는 화려함보다는 간결한 디테일이 살아 있는 옷이 더 멋져.'




매일 같이 거울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지만, 정작 자신은 자기가 변한 것을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옷장 정리를 하니 20대 때부터 지난 10년간의 나의 변화가 또렷이 보이는 것이었다.

어쩌면 단순히 한 장의 옷일 수 있지만 그 속엔 생각보다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 나의 취향, 나의 성향, 그때의 추억, 그 당시 함께했던 사람들, 그때 그 장소와 공기의 느낌까지. 아직 옷 속에 온전히 담겨있었다. 그래서 그 옷들을 버리면 왠지 이 모든 추억과도 영영- 이별하는 것 같아 버리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 가까이 옷과 씨름했을까. 아직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안된 옷들은 다시 고이 접어 옷장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이제 놓아주어야 할 옷들은 추억과 미련과 함께 접어 주섬주섬 쇼핑백에 담았다.


어차피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앞으로 또 다가올 변화를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 나는 아쉽지만, 과감하게 옷들을 떠나보내기로 했다. 지난 10여 년 간 자연스레 변해온 나의 옷처럼, 새롭게 다가올 변화와 추억과 인연 또한 나의 새로운 옷에 그대로- 담길 것이다.




ܤ 짧은 생각, 하지만 한 번쯤 필요한.

당신의 옷장엔 어떤 추억과 인연이 배어있나요?
오랜만에 묵혀있던 옷장 정리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 옷들을 한 장씩 펼쳐보다 보면 지나온 세월 속 잊고 지낸 기억과 나를 둘러싼 변화를 선명히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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