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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w Oct 30. 2022

락다운, 모든 것이 멈췄다

Covid-19, 그때 미국은 어땠을까



2020년 3월, Lockdown으로 인해 미국은 모든 것이 멈췄다.


2020 3,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에는 "Stay At Home" 명령이 시행되었다. , 모든 것이 일제히 "Lockdown(락다운)" 되었다. 간단히 말해,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모든 개개인은 집에 머무르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코로나 팬더믹의 확산세가 걷잡을  없이 퍼져나가며  세계가 공포와 불안에 떨고 었다.  기억으로 당시 한국은 연초부터 이미 K-방역을 통해 코로나 조기진압을 위해 앞장서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같은 시각, 미국의 상황은 한국과 180 달랐다. 코로나 확산으로  세계가 초비상이었지만 미국에서는 아직까지 Lockdown 시행되지 않은  들도 여전히 많았으며 당시 미국 사람들 또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먼저,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미국은 마스크 착용이 '권고'였지 '의무'사항이 아니었다. 마스크 공급도 원활하지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사람들은 마스크가 아닌 스카프나 반다나 등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다녔다.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이었다.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된 시점은 2020 4 중순이  되었을 즈음이었다

다음으로, 미국은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매우 중요시하고 존중하는 나라이다. 그러다 보니 마스크 의무 착용에 대한 엄격한 규율이 시행되기 전까지 마스크 착용은 온전히 자율적 선택이자 개인의 몫이었다. 한국이었다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에게 따끔한 눈초리가 쏠렸겠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마스크 착용은 오롯이 개인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누가 뭐라 하든 쓰고 싶은 사람은 쓰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쓰지 않았다. 한 번은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친구에게 들은 얘기가 있었는데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 미국에서 마스크는 사람들에게 '강도가 착용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있다는 것이었다. 아마 사람들의 무의식 중 마스크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코로나 초기 마스크 착용을 꺼리는 데에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미국 사재기'는 진짜였다. 코로나 공포가 바꿔놓은 미국의 일상

캘리포니아에 Lockdown이 시행되자마자 약국과 그로서리 마켓, 주유소, 런드리(코인 빨래방), 은행 등 필수 업종과 공중 보건 및 정부 기관 등을 제외한 모든 곳이 문을 닫아야 했다. 모든 식당 안에서는 식사를 할 수 없게 되었고, 식당은 To-go(테이크아웃)와 배달만 가능했다. 당시 내가 근무 중이던 회사는 여성복을 제조해 판매하는 Wholesales(도매) 패션 회사였으므로, 당연히 필수 업종에 해당되지 않았다. 고로 내가 다니던 회사도 무기한 문을 닫게 되었다. 나 또한 더 이상 회사로 출근을 하지 못하게 되어 하루아침에 무급 신세로 전락했다. 순식간에 정말 모든 것이 멈췄다.

Lockdown이 시행된 직후 미국에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마켓으로 달려가는 일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Lockdown에 공포를 느낀 미국 사람들은 일제이 마켓으로 달려가 휴지, 생필품, 음식 등 생존을 위한 사재기를 시작한 것이었다.  


"나도 지금 막 마켓에 다녀오는 길인데 휴지는 아예 없더라고."

"지금 미국 사람들 사재기 장난 아니야. 혹시 모르니 너도 빨리 마켓에 가서 당장 필요한 물건은 미리 사두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주위 지인과 회사 동료의 성화에 속으로는 '설마?' 하는 생각으로 마켓으로 향했다. 전쟁상황도 아닌데 세계 강대국 미국에서 사재기 현상이라니? 그렇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마켓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 모든 말들이 '설마'가 아닌 '진짜'임을 실감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켓의 줄은 끝없이 이어져있었고 듣던 대로 휴지 섹션은 이미 동이 나 텅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물건을 집어 카트에 담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왠지 모를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Lockdown 직후 미국의 마켓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전까지 '미국에 마켓이 얼마나 많은데 사재기는 무슨 사재기야.'라고 여유를 부렸던 나 또한 이런 상황을 두 눈으로 목격한 뒤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왠지 뭐라도 쟁여놔야 할 것 같아 생필품을 포함,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과 간편식까지 이것저것 잔뜩 카트에 담아 결제 후 마켓을 빠져나왔다.



코로나 초기 미국에서는 사재기 현상으로 인해 휴지, 물 등 생활 필수용품이 동이 났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슬기롭게

Lockdown 명령이 시행된 후 출퇴근 때마다 어지럽고 복잡했던 트래픽(교통체증)은 더 이상 없었다. 도로는 차가 없어 한산했고 거리는 고요했다. 밤낮으로 시끌벅적하던 캘리포니아가 한순간 죽은 도시처럼 조용해졌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거대함과 단호함을 한 번에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그전까지 마스크 착용도 잘하지 않던 사람들이 국가와 주지사의 공식적인 말 한마디에 명령을 일제히 따랐다.

강력한 Lockdown으로 하루아침에 타향에서 무기한 실직자가 되어버린 나 또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미국 생활 2년 차 알뜰살뜰 빠듯하게 해외살이를 하고 있던 내게 일을 하지 못한다는 건 고로 돈을 벌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당시 한국 돈으로 160만원 가량 되었던 당장의 다음 달 렌트비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딱히 수가 없었다. 그동안 조금씩 모아두었던 비상금으로 버틸 수밖에. 이후 다행히도 미국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대규모 경제 지원책이 시행되어, 총 3번에 걸쳐 Stimulus Checks(경제지원금)가 발행되었다. 또한 코로나로 인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을 못하게 되자 렌트비 부담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렌트비 지원 정책도 시행되었다. 전 세계가 처음 겪는 상황 속에 오히려 편하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


나는 Lockdown의 시간을 휴가로 받아들이기로 사고의 전환을 했다. 우울해하고 절망할 시간에 차라리 언제 또 이렇게 긴 휴가를 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현재를 즐기기로 했다. 대부분의 식당과 시설이 문을 닫았기에 딱히 갈 곳은 없었지만 집에서 요리도 해 먹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며 마치 안식년을 보내는 마음으로 최대한 편하게 보냈다.


그렇게 1년 같은 한 달 반이 지나고 5월 중순이 되어서야 "Stay At Home" 명령은 비로소 끝이 났다. 그렇게 나를 포함한 미국인들은 각자의 일터로 다시 복귀할 수 있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코로나 팬더믹 때 산으로, 바다로 자연과 더욱 가깝게 지냈다.




본문 첫 번째 사진 출처: Photo by: Jeffrey Greenberg/Education Images/Universal Images Group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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