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 부작용으로 총 4개의 병원에서 300만 원 쓴 사연
2020년 4월, 코로나의 거친 확산세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시행된 "Stay At Home" 명령으로 출근을 못하고 집에서 꼼짝 않고 있을 때였다. 얼굴을 만지다가 손톱에 살짝 긁혀 옅게 빨간 자국이 생긴 것이었다. 사실 그냥 며칠 두었으면 자연스레 사라질 자국이었는데 그때 왜 그랬지 모르겠지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한국에서 가져왔던 후OO을 자국 난 부위에 발랐다. 그런데 두어 시간이 지나자 후시딘을 바른 부위가 점점 부어오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몇 시간이 더 지나자 이제는 심지어 가렵기까지 했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나는 급히 세수를 하고 연고를 닦아냈지만 피부 상태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악화되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는커녕 부은 부위는 점점 더 커져 왼쪽 볼 전체가 빨갛게 부어올랐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내가 살고 있던 곳 인근의 한국 피부과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와서 그동안 크게 아픈 적이 없었던 나는 사실상 병원 방문이 처음이었다. 그때가 주말이었기 때문에 당장에 병원에 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 발을 동동 구르며 급한 대로 피부과 몇 군데를 찾아두고 월요일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한국 같았으면 이런 경우 예약 전화 없이 동네 피부과에 방문해도 손쉽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감기만 걸려도 부담 없이 동네 병원을 갈 수 있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일단 미국의 의료비는 매우 비싸다. 또한 미국의 의료보험은 국가가 아닌 개별 기업에 의해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의료보험도 매우 비싸다. 그렇기 때문에 감기, 복통, 고열 등의 증상에는 미국 사람들 대부분이 병원에 가지 않고 약국에서 약을 사 먹으며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동네 마켓 어딜 가도 가도 종류별로 수백 가지의 약들이 즐비하게 판매되고 있다. 의료보험이 비싸기 때문에 당연히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도 많다. 그때 당시 나는 영주권도 없었고 내가 일하던 회사에서는 보험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험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을 간다는 것 자체가 정말 '큰 맘' 먹고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의사를 만나 얼굴을 보고 얘기를 하는데만 그때 당시 돈으로 대략 $150(약 20만 원)이었다. 당연히 기타 치료비(주사 등)와 약값은 별개였다. 당시 코로나로 인해 일을 하지 못해 무급 신세 외국인 노동자인 나에게 병원은 당연히 마음 편히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아니 사실 병원은 나에게 '가면 안 되는 곳'이었다. 병원 = 큰돈 지출을 의미했다. 미국에서 나는 마음 놓고 아플 수도, 아파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때 당시 내 피부는 버티면 해결될 수준의 증상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부 증세는 점점 더 악화되어 울며 겨자 먹기로 병원에 가야만 했다. 월요일 아침, 병원 오픈 시간이 되자마자 미리 찾아두었던 피부과에 전화를 했다. 의사와 진료 예약을 잡는 것부터가 큰 관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얼굴 긁힌 자국에 후OO을 발랐는데 빨갛게 부어올라 아무래도 부작용이 생긴 것 같아서요. 진료 예약을 하려고 하는데요."
"보험 있으세요?"
"아니요. 혹시 진료비는 얼마인가요?"
"의사 선생님 진료 보시는 데는 $150이고 약 비용은 별도이세요."
"알겠습니다. 예약할게요. 최대한 빨리 진료받을 수 있는 시간이 언제인가요?"
참고로 미국은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도 많고 의료보험이 사설로 운영되는 탓에 병원마다 취급하는 의료보험회사와 커버리지 범위도 제각각이다. 그러므로 진료 예약을 위해 병원에 전화하면 보험이 있는지, 어떤 회사의 보험인지부터 물어본다. 아무쪼록 그렇게 몇 군데 피부과에 전화를 한 후, 가장 빨리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동네 근처 피부과에 예약을 했다. 한국 병원이었다. 한국은 동네에 있는 가까운 병원 어디를 가더라도 의사 선생님들의 실력이 대부분 출중하기 때문에 큰 고민 없이 병원을 선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 당시 나는 미국의 병원비가 비싸긴 비싸더라도 한국과 비슷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증거 없는 나의 기대와 희망은 큰 착각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땐 미국에서 내 인생 최초의 병원 방문이었다.
그날 방문한 피부과에서 의사는 내게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을 처방해주었다. 의사의 처방대로 매일 빠짐없이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고 발랐다. 그런데도 내 피부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점차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처방해준 일주일치 약을 다 먹고 나서도 큰 차도가 없자 나는 다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처방해주신 약을 다 먹고 연고를 발랐는데도 나아지지를 않아서요."
"먹는 약 더 처방해드릴게요. 일단 더 드셔 보세요."
나의 답답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안일한 병원과 책임감 없는 의사의 태도에 안 그래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나는 더욱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다. 새로운 병원을 가려면 일단 의사를 만나는 데에만 기본적으로 또 $150이 지출될 것이기에. 나는 속는 셈 치고 한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또 열심히 약을 먹었다. 처음에 비해 자국이 약간 옅어지긴 했지만 왼쪽 볼 주위로 빨갛게 부어오른 자국은 여전했다. 그 이후로도 나는 한번 더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지만 여전히 똑같았다. 다른 부위도 아닌 얼굴이었기 때문에 거울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우울감과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물론 내가 운이 좋지 않은 케이스였을 수도 있다. 미국에는 실력이 출중하고 정성을 다해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 선생님이 더욱더 많이 계신다. 모든 병원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단 한국처럼 병원이 활성화되어있지 않는 미국에서 특히, 동네 병원은 환자들을 진료하고 치료하는 횟수 자체가 한국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적다고 느껴졌다. 그렇기 때문에 화려한 타이틀의 미국 의대 졸업증, 의사 자격증을 걸어둔 것에 비해 일부 동네 병원은 진료 데이터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의료비가 비싼 만큼 진료를 잘 보겠지 하는 건 나의 오산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첫 번째 병원에서 호되게 당한 이후 수도 없이 내 증상과 관련해 인터넷과 유튜브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증상이 알레르기 문제일 수도 있다고 하여 이번에는 한국인 의사가 운영하는 알레르기 전문 병원을 검색해 찾아갔다. 말 그대로 '알레르기 전문'이니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내가 전화로 예약한 진료 시간보다 거의 30분 가까이 지난 후에야 의사는 정신없는 모습을 한 채 출근했다. 의사는 내 얼굴을 보더니 연고와 함께 알레르기 증상을 완화시킬 주사를 처방해주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간 나는 세수를 한 뒤 처방받은 연고를 발랐다. 근데 약을 바른 지 1시간이 채 지나지도 않아 얼굴이 미친 듯이 가렵고 연고를 바른 부위가 홍당무처럼 빨개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뿔싸. 뭔가 또 잘못되었구나.'
나는 그 길로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 세수를 했다. 얼굴이 너무 화끈거려 볼에 손등을 대어보니 뜨겁게 열이 나고 있었다. 너무 당황스러워 급히 처방받은 연고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스테로이드 계열의 연고였다. 스테로이드가 부작용이 심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부작용의 주인공이 내가 될 줄은 몰랐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 눈물이 났다. 돈은 돈대로 쓰고 내 얼굴은 점점 더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너무 화가 나 병원에 전화해 당장이라도 따지고 싶었지만 그땐 그럴 힘도 없었다. 당장 내겐 제대로 된 병원을 빨리 찾는 게 더 시급했다. 두 번씩이나 한국 병원에서 호되게 당한 이후 단단한 배신감과 불신이 생긴 나는 규모가 크고 외국인이 의사인 병원을 다시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병원 자체를 잘 안 가는 미국이기에 내 주위에서 병원 소개를 받는 일도 어려웠다. 어찌 됐든 한 시간 가까이 검색한 끝에 나는 평점이 좋고 외국인 의사가 운영하는 피부과에 가까스로 예약한 뒤 다음날 병원에 갔다. 진료비는 $150이었다. 이전의 의사와 달리 내 증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느껴졌다. 언제 증상이 시작되었고, 이전에 어떤 약을 처방받았는지 등 자세하게 물어보았고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효과가 있을 거라며 바르는 약을 처방해주었다. 그런데 약이 좀 비싸다고 괜찮은지 나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보험이 없었기에 보험적용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미 그전에 갔던 두 번의 한국병원에서 진료비, 약값, 무책임하고 안일한 의사의 태도에 내 몸과 정신은 너덜너덜해진 터라 괜찮다고 했다. 돈이 얼마나 들든 피부가 나을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작은 튜브형의 연고를 약국에서 처방받았다. 약 값은 $270(약 35만 원)이었다. 연고가 비싸 봤자 얼마나 비싸겠어라고 생각했던 나는 가격을 듣자마자 깜짝 놀라 금액을 재차 확인했다. 그리고 눈물을 머금고 결제를 했다. 그렇게 매일 정말 열심히 의사의 처방대로 연고를 발랐다. 다행스럽게도 확실히 세 번째 병원에서 받은 약을 바르고 난 후부터는 조금씩 차도가 있었다. 빨갛게 부어올랐던 부위가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조금씩 옅어지고 가라앉았다. 그렇게 거의 두어 달 가까이를 열심히 약을 발랐다.
그런데도 여전히 피부 겉면에 빨간 실핏줄이 드러나 보이는 것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미 첫 번째, 두 번째 병원에서 처방해준 연고를 바르며 자극된 내 피부는 약해졌고 혈관 자체가 커진 상태였다. 검색해보니 내 증상은 '모세혈관확장증'인 것 같았다. 피부 부작용 등으로 실핏줄과 혈관이 확장돼 줄어들지 않는 상태라 약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레이저로 확장된 혈관을 없앨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다시 레이저를 다루는 전문 피부과를 찾기 시작했고, 혈관 레이저 시술을 받아야 했다. 레이저 시술은 1회당 $250이었다. 나는 한 두 달 간격으로 총 다섯 번을 받았다. 비싸긴 했지만 확실히 레이저는 효과가 있었다. 피부 겉면에 붉게 드러났던 실핏줄은 그간 마음고생한 시간만큼 아주 천천히, 조금씩 사라졌다.
첫 번째 병원: 진료비 $150 + 약값 $50 = $200
두 번째 병원: 진료비 $150 + 주사 $60 + 약값 $50 = $260
세 번째 병원: 진료비 $150 + 약값 $270 = $420
네 번째(레이저 병원): $250*5 = $1,250
총비용 = $200 + $260 + $420 + $1,250 = $2,130 (약 300만 원)
지금에 와서 그때를 회상하며 담담하게 글을 쓰고 있지만 당시 우울감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벌겋게 부어오른 피부 상태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기도 싫었다. 한국처럼 마음 편히 병원을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돈은 돈대로 나가고 시간은 시간대로 쓰며 속은 시꺼멓게 타들어갔다. 매일 같이 거울로 들여다보는 얼굴이었기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거의 일 년 가까운 시간이 악몽 같았다. 우연히 얼굴에 긁힌 손톱자국과 아무 생각 없이 바른 후 OO의 부작용으로 인해 약 1년 간의 나의 피부 대장정은 약 300만 원과 마음고생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사태를 겪기 전 주위 사람들로부터 '미국에서는 아프면 죽어야 돼.'라는 다소 자극적이고 무시무시한 말을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었다. 비싼 의료비도 물론이거니와 미국에서는 정말 아프거나 응급상황일 때도 마음대로 응급 소방차를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응급 소방차가 한번 출동(?)하는 데에만 가격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위에서 들었던 말을 약 1년간 직접 몸으로 부딪쳐가며 실감한 나는 '미국에서는 정말 아프면 안 되겠구나.'라는 확실한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비타민C, 비타민D, 오메가 3 등 면역력과 몸에 좋다는 영양제를 잔뜩 사다 두었고 지금까지도 매일같이 꼬박꼬박 챙겨 먹는 습관이 생겼다. 미국은 내 건강은 내가 스스로 확실하게 챙겨야 하는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