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ew Oct 30. 2022

미국에서 살며 엄마와 사이가 좋아졌다

미국에 살며 더욱더 진해지는 건 그리움과 소중함



해외에서 산다는 것은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 한편에 품고 산다는 것.


길어진 해외생활로 인한 그리움 탓인지, 나이가 든 건지, 철이 든 건지 모르겠지만 미국에 살면서 달라진 점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와 사이가 더 좋아졌다는 것'이다.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되는 '엄마'

엄마는 내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부터 맞벌이를 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줄곧 외할머니 손에 컸다. 어린 내 눈에 엄마는 슈퍼우먼이셨다. 엄마는 매일 과하지 않게 곱게 두른 화장에 단정하고 깔끔한 투피스를 입고 출근하셨다. 엄마가 출근한 뒤 엄마방에선 늘 화장품과 향수의 잔향이 은은하게 났다. "또각또각" 저 멀리 복도 끝에서부터 들려오는 하이힐 소리로 엄마의 퇴근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엄마는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늘 똑 부러지셨다. 회사에서는 멋진 커리어우먼으로서, 집에서는 야무진 주부로서 항상 우리 남매와 아빠, 우리 가족을 위해 책임을 다하셨다. 하루 종일 일과 사람에 시달리셨을 엄마는 퇴근 후 집에 오신 뒤에 어김없이 두 손으로 직접 요리를 하셨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하셨던 엄마 밥엔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았다. 늘 담백하고 정성 있는 맛이었다. 가끔은 퇴근하고 집에 오신 뒤 화장을 지우시지도 못한 채 고된 몸을 소파에 뉘이셨다. 그러고선 TV 소리를 자장가 삼아 곯아떨어지셨다. 그때는 몰랐다. 그런데 나도 회사생활을 하고 나이 삼십이 넘어가면서 이젠 조금씩 알 것 같다. 그때 엄마는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어떤 마음과 다짐으로 30년 넘게 매일 같이 아침 7시 반에 집을 나가셨을까. 그동안 얼마나 쉬고 싶으셨을까. 평생을 가족을 위해 회사에서, 집에서 매일매일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셨으리라.



엄마의 음성에서 외할머니가 보이기 시작하는 건 왜일까

엄마는 잔소리가 참 많으셨다. 사실 지금도 많으시다. 내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를 향한 엄마의 잔소리 주제가 바뀌긴 하지만. 요즘 엄마의 주된 잔소리 주제는 경제와 재테크다. 매일같이 경제 관련 뉴스 기사와 유튜브 영상을 잔뜩 보내시며 경제공부를 하라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원격 잔소리를 하신다.

엄마는 강직하고 보수적인 분이셨다. 때론 감정적인 위로와 공감보다는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솔루션이 앞설 때가 많아 서운했던 적도 있었다. 엄마는 누구보다 행동으로 실천하시는 분 이셨고 성실하고 부지런하셨다. 당신 몸하나 챙기기 어려우셨을 출근 전 아침, 매일 설거지까지 뽀득하게 끝내고 출근하셨다. 학창 시절 방학 때엔 어린 남매의 밥걱정에 늘 널따란 프라이팬 한가득 김치볶음밥을 해놓고 출근하셨다. 어릴 때는 모든 일에 너무 열심이시고 체계적인 엄마의 행동과 말이 때론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여느 엄마와 딸의 관계가 그렇듯 나 또한 지기 싫어 엄마와 참 많이도 지지고 볶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느 순간부터 엄마가 나이가 드신 게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에 와서부터였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사진과 영상통화로 마주하는 엄마의 나이 드신 모습이 익숙지가 않다.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드셨지?'


예전에 비해 기력이 쇠하시고 잔소리 크기도 조금씩 줄어드는 엄마를 보면서 오히려 속상해진다. 또 언젠가부터 엄마에게서 살아생전 외할머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에 예전 외할머니의 음성과 말투가 묘하게 닮아있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자꾸만 외할머니의 말투와 행동을 점점 닮아가는 엄마가 적응이 되질 않는다. 이젠 잔소리보다 응원과 사랑의 말을 더 표현하시는 엄마를 보면서 괜히 부끄러우면서도 살결 부딪히며 함께 살아야만 느낄 수 있는 엄마의 일상적인 잔소리가 그리워진다. 하지만 만약 전처럼 한국에서 부모님과 한집에 같이 살며 매일같이 얼굴을 봤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잘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나이 든 엄마의 모습을. 예전보다 늘어난 엄마의 주름을. 줄어든 엄마의 잔소리를.


어찌 보면 해외에 떨어져 살며 느낀 감사한 점 중 하나이다. 미국에 사는 날이 늘어날수록 깊어지는 그리움은 죄송함과 감사함으로 바뀌어 엄마한테 더욱 잘해야지. 더욱 표현해야지.라고 매일 스스로에게 되뇐다.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어떤 인연으로 와 맺어진 걸까? 같이 있으면 그 익숙함에 소중함을 모르고 떨어져 있으면 그립고 보고 싶다. 자식이 나이가 들고 철이 들어 그제야 효도를 하려고 하면 이미 부모는 나이가 들어있다. 자식은 후회를 하고 뒤늦게 잘해드리려 하지만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자식은 부모에게 받았던, 담을 수 없이 넘치는 큰 사랑으로 자신의 자식을 낳아 기른다. 그리고 아마 그때서야 깨달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도 나를 이렇게 키우셨겠구나.'


하지만 그때 부모님은 곁에 계시지 않는다. 그렇게 세대를 거듭하며 반복될 것이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가. 그 사랑이. 요즘 따라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가슴에 쿵하고 와닿는다.


미국에 온 뒤 이런 깨달음을 얻은 이후로 매일 퇴근길 나의 루틴은 '엄마에게 전화드리기'가 되었다. 별것 아닌 소소한 일상일지라도 엄마와 대화를 나누며 엄마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소중함을 음성으로 대신 메운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엄마에게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오늘도 엄마에게 전화를 드린다.




이전 13화 의사 얼굴 보는데만 20만 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