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오래 산다고 다 영어를 잘할까?
영어 실력에 따라 미국에서의 삶이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어가 되면 그만큼 미국에서 접하고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무궁무진하다. 일단 영어가 유창하면 미국 회사에서 일하는 데에 제약이 없기 때문에 커리어적인 선택권이 그만큼 늘어난다. 외국인들과 소통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다면 본인을 둘러싸고 있는 인간관계와 커뮤니티의 테두리를 전 세계로 무한정 넓혀나갈 수 있다.
반대로 미국에는 한국인 커뮤니티 안에서 오직 한국인들과 접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아주, 많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 오래 살았다고 해서 영어를 잘할 것이라는 생각은 단언컨대 큰 착각이다. 일단 내가 살고 있는 곳만 놓고 봤을 때도 그렇다. 이곳엔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사실 대학생 시절 뉴욕에 있었을 때도 그렇고 동양인이 거의 없는 작은 도시가 아닌 이상 미국의 웬만한 도시에는 어딜 가든 한국인이 있다.
이 말인즉슨, 얼마나 오픈된 마인드로 미국 문화를 흡수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본인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미국에서의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5년 가까이 미국에 살며 영어를 거의, 아예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한국 유학생부터 젊었을 때 이민을 와서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되어 가는 초기 이민 세대까지. 적어도 내가 살았던 뉴욕과 캘리포니아만 놓고 봤을 때는 영어를 잘하지 않아도 미국에서 생활하는 데엔 큰 지장이 없어 보인다. 물론 미국의 관공서나 병원 등 행정 기관과 원활히 소통하는 데에는 제약이 따르겠지만. 어쨌든 미국 대도시 어딜 가든 한국인, 한국 교회, 한국 마켓, 한국 식당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인 커뮤니티 안에서만 울타리를 친 채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 2세인 Korean-American이나 초등학교 입학 시기 전 후로 미국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권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는 미국의 언어와 문화가 자연스럽고 영어로 외국인들과 소통하는 것이 익숙하며 편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사람 나름이긴 하다. 내가 만나 본 한국인 2세들 중엔 한국어를 아예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부모의 교육과 영향으로 한국어를 꽤 유창하게 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늘 절대적인 것은 없다.
아무쪼록 내가 겪은 기준에서 미국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본 결과, 대략 중학교 3학년-고등학생 이후에 미국에 온 사람들 중에서는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쉽게 말해 '머리가 다 커서' 온 경우, 한국에서 나고 자란 기억과 습관, 문화, 사고방식이 이미 몸에 배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한국인이 전무한 곳에서 살았거나 본인 스스로 피나는 노력을 한 경우가 아니라면 생각보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을 수 있다.
나 또한 평생을 한국에서 나고 자란 토종 한국인인 데다 한국에서 직장생활까지 하다가 스물아홉에 미국에 온 케이스이다 보니 이곳에서 늘 제일 어려운 것이 '영어'였다. 사실 지금도 영어는 여전히 내게 어렵고, 내가 미국에서 사는 한 영어는 아마도 나의 한평생 숙제가 될 것이다.
스물아홉 미국에 와서 처음 일했던 회사의 사장님은 청소년기 때 가족과 이민을 온 1.5세 한국인이었다. 스페인어, 영어도 할 줄 아셨지만 당연히 한국어가 더 편한 분이셨다. 당시 회사에는 남미인과 백인 직원도 있었지만 한국인의 비율이 단연 높았다. 회사 업무 중 영어로 이메일을 쓰고 외국인 직원들과 영어로 대화했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영어를 사용하는 빈도수가 많지 않았다. 당시 회사에 계시던 한국인 매니저분들 중 상당수가 고등학생 이후에 미국으로 이민으로 온 분들이셨는데 대부분 영어를 잘하지 못하셨다. 더군다나 내가 사는 지역은 한국 마켓, 한국 식당, 한국 교회 어딜 가든 한국인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에 막말로 업무 외적으로 따로 노력을 하지 않는 이상 영어가 폭발적으로 늘 수 없는 환경임이 확실했다. 머리가 다 커서 미국에 오게 되면 새롭게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일도 쉽지 않다. 뻘쭘하고 어색해서, 귀찮아서 등 다양한 핑계와 이유로 그렇게 미국에 사는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인 커뮤니티 속에서만 살아간다.
나도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미국에서 영주권을 받게 될 줄도 몰랐고 평생 살 생각은 더더욱 아니었기에 영어에 대한 위기감과 절박함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 영주권을 받고 점차 미국의 삶에 익숙해져 가며 문득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미국에서 나고 자란 2세인 아이와 원활한 소통을 하지 못하면 어쩌지? 덜컥 겁이 났다. 내 아이와 깊은 대화를 하지 못하게 될까 봐 순간적으로 아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중에 더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서 '아, 진작 영어 공부 좀 더 열심히 할걸.'이라는 후회를 하기 싫었다.
'도저히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더 적극적으로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
이러한 위기감이 내게 동기부여가 되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매일 자주 영어에 노출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요즘은 유튜브만 봐도 다양하고 풍부한 양질의 영어 콘텐츠가 넘쳐난다. 이뿐만 이겠는가. Google에 'Language Exchange'라고 간단히 검색만 해봐도 수십 개의 언어교환 사이트와 앱이 나온다. 넷플릭스의 미드와 시리즈, 리얼리티 프로그램 또한 원하는 입맛대로 골라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기회가 없어서, 시간이 부족해서,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몰라서는 솔직히 다 핑계라고 생각한다. 영어에 관한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사실 스스로 양심에 조금 찔리긴 한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아무쪼록 요즘 나는 매일 언어교환 앱을 통해 외국인들과 영어로 메시지를 주고받고 통화를 한다. 그리고 넷플릭스의 미드를 보며 미국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원어민 표현을 익히며 공부하고 있다. 가끔은 Meetup 같은 모임 커뮤니티에 나가 외국인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때도 있다.
미국에서 사는 이상 더 이상 영어를 숙제라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한평생 같이 가야 할 친구로 생각하기로 했다. 경험 상 영어실력을 늘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열린 마음인 것 같다. 그리고 조금씩이라도 '자주' 영어에 노출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 환경은 본인이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뻘쭘해하지 않고 부족하더라도 당당하게 외국인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매일 꾸준한 노력이라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게 미국 살이 4년 6개월 차인 나는 오늘도 여전히 매일 영어 공부를 한다. 영어가 더 이상 숙제가 아닌 편안하고 익숙한 친구가 되는 그날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