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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할머니

우리 동네 이야기


이웃에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할머니 집 앞 고무통에 채소와 이름 모를 꽃들로 가득하다.
집 모퉁이에 바케스(양동이)가 한 줄로 서 있다. 바케스 안을 살펴보니 콘크리트가 가득 담겨있다.

쉽게 들고 옮기기도 힘들 정도이다.

왜?
막아놨지?
통이 없으면 잠시 주차도 가능할 듯한데~~

예전에 골목길에서 접촉사고가 나면서 차량이 벽을 박아서 큰일 날 뻔했단다.
그 이후 혹시나 차가 집을 덮칠까 봐 안전을 위해 하나씩 만들었다는 이야길 최근에 듣고 할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

2년 전쯤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온 어느 날 아침이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3층까지 들린다. 누군가 양동이 콘크리트 사이에 쓰레기를 버려놓아서 할머니께서 화가 나신 모양이다.

"어느 x 놈이 쓰레기를 버렸노"
"내한테 걸려봐라. 가만두는가 봐라."
"쓰레기를 저거 집 앞에 버리지 왜? 남의 집 앞에 버렸노."

목소리에 놀라 3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맞은편에 할머니다.
아무도 없는데 혼자 고래고래 고함을 치신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할머니에 대한 선입견은 무서운 호랑이 할머니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사무실을 옮겨오며 공사를 하면서 폐기물을 덤프트럭으로 여러 번 버렸다.
마지막으로 버릴 때 주변에 오래된 골목길 여기저기 쌓인 쓰레기를 한꺼번에 모아서 치워줬다.
그리고 나서부터 할머니와 가까워졌다.

사무실 옆 카페를 오픈하여 인사도 할 겸 얼마 전 주변에 사시는 분들께 토마토 주스를 만들어 갖다 드렸다.

할머니댁에도 주스 한 캔을 갖다 드렸다.

문을 여시면서

"왜 왔노"

"음료수 한잔 드시라고요."

"아이고, 나는 안 묵어도 된다."
"내가 몰라서 못 사묵는다."
"그기는 뭐 파노?" 하시며 미안해하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가 듬성듬성 빠진 옥수수를 삶아서 갖고 오셨다.
"시원찮지만 맛봐라"하고는 갖다 주고 가신다.

오늘도 오락가락 비가 내리는데 밭에 다녀오시는 길인가 보다.
집으로 가시는 길에 부추, 풋고추를 챙겨주신다.

아내가 얼른 수박주스를 한잔 드렸더니 손사래를 치신다.
"나는 안 묵는다. 집에 가면 감주도 있고 비싼 거 팔아라."
그래도 손에 쥐어 드렸다

할머니께서 주신 부추를 보니 비 오는 날 부추전이 생각난다.
아내는 감자, 풋고추, 양파, 오징어, 카레가루를 넣어서 부추전을 구웠다.

먼저 한 판을 구워 호일에 담아서 할머니 댁에 벨을 눌렀다.
"누꼬"
"할머니~ 앞잡이 시더"
잠시 후 파자마 차림으로 방충망을 열고 나오신다.

"이거 먹꼬"
"할머니 주신 거 전 부쳐왔니더"
"너거 먹거라. 나는 우리 집에 많다."
"그래도 금방 구웠는데 맛보시소"
"아이구 참~내, 잘 묵을게."

그리고 돌아서 나오는데
"이거 가져가라."
방 입구에 있는 가지랑 오이를 건네주신다.

호랑이 할머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너무나 따뜻한 분이다.
혼자 사시다 보니 주위 사람들에게 약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큰소리치시는 것 같다.

요즘은 아침에 사무실과 가게 문을 열어놓고 주변 도로부터 청소하고 일과를 시작한다.
이렇게 앞집, 뒷집 한 분씩 한 분씩 알아가는 재미가 솔솔 하다.


#우리동네이야기

#8번길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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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와 풋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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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긴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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