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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창인 Jun 28. 2020

89. 장마

그런 비였다, 느닷없이 찾아온 탓에, 급한 대로  역내의 비닐우산이, 펼치자마자 까뒤집어지는, 그렇게 제 몫을  보지도 못한 우산 몇몇이, 출구 앞에 시체처럼 널브러진,

뉴스는 오늘부터 장마라 했다. 그러니까 어제까지는 장마가 아니었다.

하늘이 모네처럼 무너진다, 족히 열흘은 무너질 것이다, 먹구름은 물을 짜내는데도 가라앉는다, 참새들은 질식사한다, 유리창은 물성을 잃는다, 아스팔트는 명멸한다,

나는 젖는다. 젖은 것들이 몸에 들러붙는다.

이제는 그렇다, 잡화점 처마 아래에 서도, 지하로 되돌아가, 밀봉된 열차를 타도, 이불을 뒤집어써도, 나는 꼼짝없이 젖었다, 빨래도 마르지 않는다,

잠을 자야 한다. 오늘부터 장마가 아닌 곳은 꿈밖에 없다.

그러나 밤샌 빗방울의 공습, 방향 잃은 날벌레, 습기  모세혈관, 벽에 어린 곰팡이, 눈을 감아 깨야 한다, 더러운 , 같은 , 같은 , 죽어서 깨야 한다, 꿔야 한다, 살아야 한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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