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날에 나는 온몸에 있던 야심이 죽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람이 뼈와 근육만으로 서는 게 아니라고 그때 처음 생각했다. 흐물해진 나는 하수구에 빨려들어가지 않기 위해 더 높은 고지를 점했다. 점하며 나는 거짓말을 썼을 때를 떠올렸다. 딱 이만큼 추웠을 때. 모든 것이 살아 숨쉬었고 나는 글을 찾는 투사처럼 다녔다. 벽돌집이 커피집인지 맥주집인지도 모르던 때. 나는 가보지도 않은 그 집으로 사람 하나를 만들었다. 이거 너 얘기냐고 친구들이 묻던 때. 은근한 자부심을 곁들여 거짓말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적당한 밥을 먹고 적당한 만큼 웃으며 적당한 돈을 벌고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해야지. 거짓말은 재미로만 하고.
춥다. 권태와 추위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권태를 느끼는 게 아마 아닐 것이다. 카프카가 21세기 한국인이었다면 무슨 글을 썼을까? 나는 카프카가 될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의 머리통으로 들어가려는 속 편한 사람이 되었다. 흐물해졌으니까 귓구멍을 타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카프카가 말했다. 책은 우리 내부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깰 수 있는 도끼여야 해. 이제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건 지구온난화 밖에 없다.
또 한 명의 예술가는 입대 영장을 받는다. 쇼미더머니에서는 가끔 좋은 노래가 나온다. 한국말도 아닌 것을 가르친다. 코로나는 자꾸 변신한다. 나는 이제 그만 흐물하기로 한다. 너무 추워서 얼어붙었나? 뼈와 근육만으로 선다. 어디서 쾅 소리가 났는데 방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