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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창인 May 22. 2022

104. 까눌레

1.

나는 까눌레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 싶었다. 까눌레를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내가 까눌레를 쓰고 싶다. 까눌레, 까눌레…… 까눌레는 먹는 것이 아니라 입안에서 굴리는 것. 그래서 나는 아마 까눌레를 쓸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2.

맛보지도 맡지도 않은 것. 그러나 어느 빵집의 진열대에서 분명 본 적은 있는 것. 그러니까 누가 나한테 까눌레를 아세요, 묻는다면 나는 굉장히 곤혹스러울 것이다. 알지도 않고 모르지도 않는 것. 나는 그런 것을 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까눌레, 까눌레……


3.

까눌레, 까눌레…… 그게 뭐였더라. 나는 확신으로 쓰는 자는 아니지만 의심으로 쓰는 자도 아니다. 써야 한다는 의무로 쓰는 자는 아니지만 쓰고 싶다는 욕망만으로 쓰는 자도 아니다. 까눌레는 확신과 의심에 의무와 욕망에 애매하게 걸쳐있는 것. 걸쳐있는, 빵. 내가 미술을 했다면 이제 어딘가 위태롭게 기댄 까눌레를 그렸을 텐데.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는 모르겠다. 


4.

매체가 그릇이고 그 안에 담는 게 이야기라면, 사실 그릇에는 어떤 이야기든 담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그릇이 모든 이야기를 맛깔나게 담지는 못한다. 이야기꾼의 불행. 이야기는 쏟아지는데 그릇은 쉽게 바꿀 수 없다. 사실 내가 고른 그릇은 이야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 거니까. 그냥 내가 좋아하고 잘 써오던 그릇. 그 위에 까눌레, 까눌레……


5.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 여기를 말하는데 자꾸 과거를 돌아보는 듯한 시간. 그 원탁 위에, 까눌레 그립톡이 달린 핸드폰이 있었다. 요즘은 진짜 같은 오브제의 그립톡이 유행이라고. 까눌레, 까눌레…… 그립톡. 나는 좋은 사람들에게 까눌레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좋은 사람들은 좋은 웃음으로 답했다. 이제 그립톡 얘기까지 쓰면 되겠네. 그런데 사실 그 반대다. 그립톡이 있어서 나는 지금 까눌레를 쓰는 것이다. 그전까지 까눌레는 그저 애매하게 걸쳐있었다.


6.

여전히 알지도 않고 모르지도 않는 것. 그러나 존재하는 것. 이제 까눌레가 있으므로 나는 까눌레를 입안에서 굴리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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