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의 내가 있다. 폭력으로 요약한 내가 있다. 어휘의 나는 열여덟부터 있다.
첫번째 어휘의 나는, 상대주의. 카뮈와 쿤데라를 거쳐 매그놀리아에 이르는 나. 절대의 좋음도 나쁨도 없을 지어다. 그저 우연만이, 또는 그저 지금 여기만이. 나는 읽는 자로서 전자를 더 좋아하고 쓰는 자로서 후자를 더 좋아한다. 세상의 물컹거림은 느끼는데 여전히 껍데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어휘의 나. 이해 가능한 범위에서 멋있고 싶은 어휘의 나.
두번째 어휘의 나는, 접선. 그 사이에 공백이 좀 길었다(공백은 물론 어휘-폭력의 증거. 그러나 나는 폭력에 많이도 무뎠다). 너와 나는 겹칠 수 없고 기껏해야 접할 뿐이다. 살덩어리에 처음으로 새기는 어휘의 나. 나는 그때 이것이 온통 사랑에 대한 얘기인 줄 알았으나 지금에서는 다른 것들을 건져낸다. 세상에 등을 지고 너와 나로, 몸으로, 물리량으로 전회하는 어휘의 나.
세번째 어휘의 나는, 거짓말. @lovethelife.lovethelies의 나. 관성처럼 삶으로 시작했으나 영화를 경유하여 마침내 거짓말에 다다르는 나. 홍상수의 나,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나. THE MOVERS의 나. 그리고 나는 이때 처음으로 어휘의 나를 마주한다. 어휘의 나는 열여덟부터 있지만, 한편으로는 스물넷부터 있다. 거짓말을 사랑하는 것과 “거짓말”을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고. 마침내 해명을 요하는 어휘의 나.
네번째 어휘의 나는, 언어. 일단 스스로를 해명시키기 위해 진심으로 세상을 등진 나. 또는 이제 쉴 곳이 필요해 안전한 세계를 찾은 나. 플루서의 나. 동음이의 어항들의 나. 어휘의 어휘의 나. 나는 내 안에서 시작해, 내 표면을 거치고, 내 밖으로 나아간다. 이 완결적인 나에게 다시 새로운 공식을 요청하는 마지막 어휘의 나. 이 모든 게 그저 어휘에 불과하고, 지금 나는 그 불과함을 너무도 사랑하지만. 언젠가 여기에서 떠나야 한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지금과 같은 전회로는 족하지 못하고, 나와 나와 나는 함께 무너져 내린다. 마침내 자기붕괴를 요하는 어휘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