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게 내 진짜 무게인지"
나는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은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남부럽지 않은 부모님 덕에 남이 부러울 만한 환경에서 태어났어도 남부럽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거북할 정도로 상대주의라는 날 선 잣대를 들고 다닌다. 아빠의 고집에 대한 소심한 저항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빠를 사랑하지만 아빠의 고집까지 사랑하지 못하는 불효자임을 최근에야 인정하게 됐다.
나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모든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영화가 담고 있는 어떠한 뜻과 그 뜻을 감싸는 어떠한 작법을 좋아할 뿐이다.
나는 이상적인 여자를 그리기 어려웠고 어려움은 자랄수록 확실해졌다. 나는 이상적인 여자를 만나지 못하고 나 역시 이상적인 남자가 되지 못하며 그래서 이상적인 사랑은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나는 외향적이지만 요즘에는 내성적인 면이 더 강하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한없이 가볍다가도 한없이 무거워져 어떤 게 내 진짜 무게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나는 문학을 모르면서 문학을 좋아하고 철학을 모르면서 철학을 좋아한다. 나는 앎과 모름이 선호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르는 것을 진정 좋아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나는 남에게 냉소적인 사람으로 비치지만 내 안에도 가느다란 따뜻함이 남아있을 것을 믿는다. 나는 그 믿음이 이기심에 대한 자기합리화인 것 같아서 열등감을 느낀다.
나는 이런 소개를 몇 장이고 더 써내려 갈 자신이 있다. 그러나 주민등록증에 여권에 학생증에 요구되는 나는 단지 이름 석자뿐인 듯하여 말을 줄인다.
16.12.18. 씀
17.06.03. 다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