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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배움이 없는 시간

"문제만 있고 해결책은 없고 범인도 없다"

by 백창인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배가 꺼지는 상황에서 어른의 지시를 성실히 따른 학생들은 찬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여전히 우리는 땅이 꺼지는 상황에서도 야자를 멈추지 말기를 강요받고 있다.


우리를 가르치는 것은 과거의 가치관이다. 과거의 가치관은 언제까지 유효할지 모른다. 이미 무효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친절이 또 다른 위협이 되어버리고 겸손이 또 다른 오만이 되어버린 오늘에, 도덕 교과서가 가르치는 친절과 겸손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것이 이전 세대의 잘못은 아니다. 한 사람이 지켜오던 신념은 필연적으로 구시대적 가치관이 된다. 우리가 믿는 것들 역시 언젠가는 구태가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교육은 본질적으로 아이러니다. 그들이 교육을 통해 물려주는 것은 경험이라는 소중한 소산이자 기성세대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이다.


우리는 아이러니를 세대 갈등으로, 조금 더 익숙하게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 '젊은 놈들'이나 '똥군기', '꼰대' 등으로 부른다. 아이러니는 타파될 수 없고, 세대 간의 틈은 봉합될 수 없다. 문제만 있고 해결책은 없다.


어제 한 아저씨가 화장실에서 푸념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가 잘못해 가지고...... 너희한테 이런 세상을 물려준 게 너무 미안하다......" 그건 아저씨의 잘못이 아니다. 그건 아저씨 세대의 잘못도 아니다. 문제만 있고 해결책은 없고 범인도 없다.


굳이 범인을 짚자면 시간이다. 시간 앞에서 우리는 처참히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자괴감은 우리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시간의 무게로부터 오는 것이 아닐까.


배움이 없는 시간이다. 스스로라도 책을 읽고 경험을 하며 배워보려고 노력하지만 내가 진실되게 믿어야 할 가치 한 개도 찾지 못했다.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종교에 귀의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며 허우적거린다.


16.12.11. 씀

17.06.13. 다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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