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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소고기무국 (1)

"절 두 번 그리고 반절"

by 백창인

엄마가 나를 깨웠을 때 가족들은 이미 나갈 채비를 마치고 있었다. 연휴 내내 꿀 같은 늦잠을 누렸더니 그새 몸이 침대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부랴부랴 머리를 감고 잠이 덜 깬 눈으로 아무렇게나 옷을 입었다. 아침 일곱 시. 큰집에 가는 것치고 그렇게 이른 시간도, 늦은 시간도 아니다. 꼭두새벽부터 지방 내려가는 길에 갇혀있을 친구들을 생각하면 큰집이 서울에 있는 게 참 다행이었다.


약속시간인 여덟 시를 조금 넘겨 큰집에 도착했다. 우리 가족은 한 번도 제때 큰집에 간 적이 없었다. 도통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내가 한몫했지만, 사실 부모님도 딱히 혼내실 생각은 없어 보였다. 큰집에 와 계신 친척 분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몇 번의 "안녕하세요"와 "그래 왔니"가 오간 후 우리 삼 남매는 자연스레 현관 옆 샛방으로 들어갔다. 샛방에는 결혼하신 사촌 형의 꼬마와 대학생 사촌 형이 있었다. 대학생 형은 방바닥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고, 꼬마는 로봇 모형을 들고 팔을 휘저었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텔레비전을 켰다. 이만큼 좁은 방에서는 굳이 리모컨이 필요하지 않다. 브라운관의 윙윙대는 곡면 바로 앞에서 나는 멍하니 초점을 맞췄다. 자다 일어나서 그런지, 중간부터 보기 시작해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재미가 없는 건지. 추석 특선영화는 무의미하게 화면을 담았다.


문밖에서 우리를 불렀다. 제사상이 다 차려져 있었고, 남자들이 한 줄로 서 있었다. 한 줄이라고 해봤자 네 분이었다. 줄의 오른쪽으로 대학생 형, 나, 남동생이 붙었다. 제사는 조촐했다. 향 연기만큼이나 고요하고 마른 북어만큼이나 건조했다. 절 두 번 그리고 반절. 몇 차례 술잔의 기울임. 절 두 번 그리고 반절. 성경의 기도문 낭독. 절 두 번 그리고 반절. 절 두 번 그리고 반절......


다시 샛방 안이었다. 사람이 많기보다는 제사상이 작아서 한 번에 같이 먹을 수가 없었다. 브라운관에서는 아까 하던 영화가 끝나지 않았다. 꼬마가 로봇에 지쳤는지 채널을 마구 내려 '또봇'을 찾았다. 영화광인 남동생은 그걸 또 막아보겠다고 채널 올림 버튼을 질세라 눌렀다. 대학생 형이 담배를 피우러 나간 자리에 나는 널브러져, 화면이 뉴스, 예능, 광고, 바둑, 광고, 뉴스로 딸깍딸깍 변하는 것을 죽은 듯이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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