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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배경화면

"후회하기에도 늦은 시간"

by 백창인

초등학교 3학년에 처음으로 휴대전화를 갖게 되었다. 많은 아이들이 나와 비슷한 나이에 휴대전화를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화와 문자에 약간의 기능만 더한 구식 전화기였는데도 애완동물인 마냥 좋았다.


게임을 하는 것 다음으로 재미있는 것이 배경화면을 바꾸는 일이었다. 하루를 거르지 않고 배경화면을 바꿨다. 내 휴대전화는 고양이가 되었다가 구름 없는 하늘이 되었다가 용이 되었다. 날마다 다른 옷을 입히는 기분이었다.


그때는 친구들끼리 서로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놀았다. 그런데 유독 지금까지 기억나는 것은 그 친구의 배경화면이다. 아버지의 사진이었다. 그 친구와 같이 찍은 사진도 아닌 아버지의 증명사진이었다. 내 아빠보다 몇 살은 젊어 보였다. 어쩌면 아버지가 아니라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형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누가 됐든 증명사진이라니, 철없는 시절에는 그것이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늘 그 사진이 배경화면이었다. 따분해 보였다. 언젠가 친구에게 배경화면이 하필이면 왜 아버지의 증명사진이냐고 물었다. 친구는 이유 없이 짜증을 냈다.


나중에 전해 들어 친구의 아버지께서 오래전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에는 후회하기에도 늦은 시간이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그때 일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싶지만, 시간이 맞지 않고 장소가 맞지 않는 것을 핑계로 아직까지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14.10.1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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