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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등반

"별 볼 일 없는 산이라도"

by 백창인

부끄럽지만 책의 끝 장을 읽은 적이 드물다. 책은 등산과 같아서, 처음에는 호기롭게 걷더라도 한 번 호흡이 끊기면 정상을 보기가 어렵다. <채식주의자>는 중턱에서 막혀버렸고,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몇 걸음 걷지도 못했다.


내게 영감을 준 책들은 완독하기가 쉬웠다, 또는 완독을 했기 때문에 영감을 줬다거나. 그래서 안 읽히는 책도 꾸역꾸역 책장을 넘겨보지만, 그때부터는 이미 독서가 아닌 노동이 되는 것이다. 신이 나에게 선물을 주신다면 모든 책을 막힘없이 읽어내는 능력을 부탁할 것이다.


내 글을 읽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생긴다. 감탄하든 비웃든 나는 큰 고마움을 느낀다. 단 하나의 글이라도 끝까지 읽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다. 별 볼 일 없는 산이라도 등반해 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다.


16.10.01. 씀

17.07.05. 다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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