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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모자

"열기가 아니라 온기임을 알았다면"

by 백창인

나는 모자를 싫어한다. 쓰고 있으면 머리통이 답답할뿐더러, 오랫동안 쓰고 있다가 벗었을 때 눌린 머리가 이상해 보이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이 뻗칠 대로 뻗쳐서 백수 취급을 받겠구나 싶을 때 가끔 모자를 쓴다. 그리고 그날은 하루 종일 온몸이 갑갑하다.


내가 아빠가 되면 자식에게는 모자를 씌우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쓰고 싶다고 할 때까지는 굳이 사주지도 않을 것이다. 어릴 때 눈이 부신다며 엄마가 쓰게 하셨던 모자가 얼마나 싫었는지 기억하기 때문이다. 모자를 써도 눈이 부시는 것은 똑같은데, 더운 날씨에 옷 하나 더 껴입은 것 같아서 짜증나기만 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는 굳이 내 머리에 모자를 씌워주셨다. 그때는 모자를 벗고 싶어서 안달이었지만, 생각해보면 참 죄송한 일이다. 그 모자가 붙들고 있는 것이 열기가 아니라 온기임을 알았다면 그토록 답답해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 두상을 예쁘게 한답시고 두 살 된 아기의 머리에 헬멧을 씌우는 것이 유행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아기는 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 종일 헬멧을 쓰고 있어야 한다. 우리 엄마가 씌워주셨던 모자는 그런 헬멧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리고 설령 내가 어릴 적의 기억 때문에 자식에게 모자를 씌우지 않더라도, 나의 아내는 햇빛이 내리쬐는 날 아이에게 모자를 씌워주기를 바란다.


14.09.29. 씀

17.06.30. 다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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