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은 차벽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경복궁에 가려고 한 것이 아님에도 지난 겨울에 쓴 글의 속편마냥 이름 지은 것은 두 가지에서다. 첫째, 어쨌든 경복궁역에서 내렸기 때문에. 둘째, 그 언저리에서 그때 느꼈던 감정 비슷한 것을 느꼈기 때문에.
날씨는 하나도 춥지 않았고, 경복궁은 일산에서 가장 가까운 서울이었다. 다음 주는 크게 바쁜 일이 없었고, 새로 빌린 책은 외투 주머니에 딱 맞게 들어갔다.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갈 이유도 있었다. 수요일에는 최순실 사태에 대한 발표를 했고, 금요일의 영어 발표에서는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끊임없이 생각하자고 역설했다. 그러고서 <1인 시위>와 같은 글만 끄적거리고는 가만히 앉아있자니 너무 부끄러웠다. 가만히 앉아서 월요일에 있을 수학 시험이나 준비하자니, 다소 거만한 태도로 친구들에게 이 시국을 논했던 것이 부끄럽고, 후에 변화가 생겼을 때 "이게 민주주의다"라며 떳떳하게 말하고 다닐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경복궁역 내에는 경찰들이 벽을 이루고 있었다. 몇 개의 출구는 통제되었다. 선택권이 없이 한 길을 계속 걷다 보니 볼륨을 높이듯 함성 소리가 서서히 커졌다. 세종문화회관의 뒤편에서 골목을 타고 나오자마자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촛불과 피켓을 들고 다 같이 무대에 시선을 고정했다. 무대 뒤편으로 세종대왕이 군중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경복궁은 차벽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이건 무용담보다도 참회록에 가깝다. 나는 할 일이 없다. 10만의 1이 되어 박수만 쳤을 뿐이다. 아는 사람이 없는데도 왠지 낯 뜨거워 구호도 제대로 외치지 못했다. 내가 갔을 때는 행진도 이미 끝난 뒤였다. 거국내각이니 책임총리니 하는 것도 열심히 찾아보지 않았다. '내가 이러려고 시민 했나' 하는 자괴감에 빠져 대안과 해답을 찾는 일에 소홀했다. 나는 단지 내 부끄러움을 덜기 위해 경복궁에 간 것이다. 아침이 되어 생각해보니 이제 그것도 하나의 부끄러움이 되었다.
16.11.06. 씀
17.06.28. 다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