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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자랑 그 이면에

"거짓된 삶을 연출했던"

by 백창인

어제 했던 내 자랑에는 거짓이 없다. 그러나 거짓이 없다고 꼭 진실인 것은 아니다. 자랑 그 이면에 부끄러움이 있었다.


사르트르의 <말>은 자랑만 하는 책이 아니다. 어릴 적의 치부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자신은 일종의 연극을 하고 있었다고 밝힌다. 거짓된 삶을 연출했던 사르트르, 연극의 한 장면을 소개한다.


때마침 으스댈 기회가 생겼다. "당신의 가장 큰 소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나타난 것이다. 나는 서슴지 않고 답을 적었다. "군인이 돼서 전사자들의 원수를 갚는 것." 그러고는 너무 흥분하여 그 이상 계속할 수가 없어서 마룻바닥으로 뛰어내려 내가 쓴 것을 어른들에게로 가져갔다. 그들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어머니는 얼굴을 붉히고, 피카르 부인은 내게 수첩을 돌려주며 말했다. "얘야, 이런 것은 진심으로 써야만 재미있는 거란다."


이걸 어쩐다. 나한테도 정확히 같은 장면이 있다. 중학교 3학년을 즈음해서 쓴 글, <겨울의 허수아비>. 나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 나는 허수아비를 본 적이 없고, 모르는 것을 질문하기 위해 친구에게 네 차례 전화를 걸지도 않았다. 그저 집 주위에 있는 논밭과 추운 겨울의 정경을 짜깁기한 허위였다.


<잘 하며 자란다며 자랑하며>에서 말했던 '확인'의 과정에는 내 치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모순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과거의 나와 언제라도 되풀이될지 모르는 현재의 나를 확인했다. 내가 걷는 길이 맞다는 기쁨에 가려지긴 했지만 나의 어느 만큼은 창피함에 고개 숙이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글을 쓸 때 하나의 원칙을 무조건 지키기로 했다. 겪은 일만 쓰자. 거짓된 경험은 언젠가 들킨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겪어야 했다. 혼자 서울을 걷는 것도, 자전거를 타고 논밭을 달리는 것도, 집회에 참여해보는 것도 내 글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욕심에서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이 곧 나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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