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영웅을 맡겠다고"
초등학교 2학년에 우리 반에서 '역사놀이'가 유행했다. 각자 맡고 싶은 역사적 인물을 고르고 역할놀이를 하는 것이다. 애들이 아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 다들 고주몽, 광개토대왕, 아니면 김유신을 하고 싶어 했다. 나는 주몽이 제일 좋았다.
생각해보건대 같은 역사놀이를 지금의 우리 반에서 한다면, 친구들은 누구를 고르고 나는 누구를 고를까. 왜 어릴 적 우리는 저마다 영웅을 맡겠다고 다투었을까. 어릴 적 품던 야망을 그대로 간직하지 못하고, 벌써부터 현실 앞에 안정적인 직업을 택하려는 우리인데 말이다. 지금 역사놀이를 하더라도 우리는 모두 위인을 맡겠다고 아옹다옹할 것 같다. 영웅이 되는 데에는 엄청난 책임과 고통이 따름을 모두 알지만, 그래도 이름 없는 농부나 상인으로 남기는 싫을 것이다. 그래서 선택해야 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서 농부네 집 아들 개똥이를 맡든지, 20년 후에 진짜 영웅이 되어 지금 맡을 역할에 누를 끼치지 말든지. 아직 개똥이 수준인 내가 영웅을 꿈꾸니, 무슨 역할을 맡아야 할지 혼란스럽다.
14.11.11. 씀
17.07.08. 다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