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는 정말로 무게가 있다"
초등학생 때 비올라를 배웠다. 나름 열심히 해서 교회의 오케스트라까지 들어갔다. 여러 곡을 무대에서 연주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단연 '베토벤 5번 교향곡'이다. 첫 소절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그 곡이 30분을 전후하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 몇백 년 전 베토벤은 운명 교향곡을 어느 공연장에서 지휘했을 것이다. 그리고 천의 자리가 달라진 지금까지도 강력한 첫 소절은 여기에 뚜렷이 남아있다. 내가 고사리손으로 비올라 선율을 보탠 것은 그 역사의 아주 작은 일부가 되는 과정이었다.
같은 이유로 나는 고전 읽기를 포기할 수 없다. 어렵고 이해가 힘들며 지루한 순간이 잦다. 그런데 그 글이 수백 년의 숨결을 품었음을 떠올리면 면전에서 하품을 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진다. 시간이 책의 가치를 더한다. 시간에는 정말로 무게가 있다.
지금 여기를 열심히 살아서 역사에 남고 싶다는 얘기를 했었다. 어차피 역사는 내가 죽고 난 뒤의 일인데 무슨 상관이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그저 시간을 더하고 더해, 내 업적의 무게를 불려, 후대에게 "이것 봐라, 너희는 이런 거 못하지"라고 잘난 체하고 싶은 심보일 수도 있겠다.
16.10.23. 씀
17.07.08. 다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