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포춘쿠키>와 <지금 여기>

by 백창인

포춘쿠키


<포춘쿠키>라는 소설을 써냈다.

첫 번째 소설은 엄마가 여동생을 뱃속에 품었을 때 병실에서 썼다. 나는 아홉 살이었다. 당시 한글 2005에도 지금의 클립 아트 같은 게 있었다. 녹색 계단 사진 하나를 고르고 계단을 오르는 모험 이야기를 썼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둘째는 교내 문예 대회에 출품하려고 썼다. 열일곱 열여덟 언저리였다. 화자도 제목도 ‘파블로프의 개’였다. 파블로프의 실험이 끝난 뒤 버려진 개의 이야기였다. 개는 종소리를 잊으려는 동시에 종소리를 반가워한다. 개는 종소리 덕분에 삶을 얻지만 종소리 때문에 죽음을 맞는다. 이 글이 어디 갔는지는 모른다.

셋째가 <포춘쿠키>다. 모험도 없고 말하는 개도 없다. 내 주변에 있을 법한 두 대학생 이야기다. 내가 전하고 싶은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었다. 모두의 것과 나의 것. 말랑한 것과 단단한 것. 의미가 있는 것과 의미가 붙는 것. 이들이 이루는 평행선, 나는 그 이야기만 하면 족한데. 두 개의 삶을 새로 만드는 것은 어려웠다. 내 손재주가 조금 좋았다면 활자로 표현하지 않는 편이 어땠을까. <포춘쿠키>는 내 좁은 지인 몇몇의 카톡방에 메일함에 떠돌고 있다. 일일이 손으로 쓰는 게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


<지금 여기>는 내가 2년 전에 낸 수필집이다.

그때는 <지금 여기>가 나의 큰 자부심이었다. 고등학생이 책을 내는 게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값을 괜히 올려잡은 것은 알량한 돈 욕심 때문도 있었지만 자부심의 값이기도 했다.

2년 후 <지금 여기>는 여전히 나의 자부심이다. 대학생이 책을 내는 게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는 더 이상 ‘지금 여기’가 아니다. 그래서 자부심의 크기는 많이 줄었다.

우연히 지인들의 구매 의사가 겹쳐서, 선물할 요량으로 열 권 정도를 오랜만에 구매했다. 줄 때마다 창피함에 군말을 덧붙였다. 오래된 생각임을 감안해달라고. 누구 것에는 아예 속지에다 ‘그때 거기’라는 새로운 표지를 그려주었다.

훌륭한 작가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수십 년이 지나도 읽히는 글을 쓰려면 여간 뻔뻔해서는 안 된다. 나는 뻔뻔하지 않다. 뻔뻔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지금 여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포춘쿠키>를 내밀고 싶다.


19.07.25.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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