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잔잔한 2019년이었다. 서 있을 때는 파도였지만 돌아보면 물결이었다. 해 나가던 것들을 끌고 나가는 시간이었다.
올해는 다르다. 이름 붙일 만한 사건만 벌써 셋이다. 둘을 앞두고 있고 하나를 며칠 전에 마쳤다. 요즘 나는 거짓말을 더 즐겨 쓰지만 이 기억들은 사실대로 적힐 필요가 있다. 나중에 더 좋은 거짓말을 만들기 위함이다.
돈이 필요했다. 파도 2 때문이다. 그러니까 파도 1은 절차에 불과했다. 파도 속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름의 상징도 있었다. 6년 간 배움을 얻었던 곳에 3주 간 배움이 되러 가는 것. 미래를 위해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 그런 시덥잖은 수사를 붙였다.
그러나 파도 속에는 현재만이 있었다.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시간에 눈뜨기도 바빴다. 꿈이 아니라 잠을 원했다. 소용돌이가 관성이 될 즈음 또 다른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되새김질할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모든 게 끝나고야 침전한 것들을 끌어올리는 이유다.
힘든 3주가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고통의 출처를 몇 가지 그려보았다. 지레짐작한 것들은 얼추 맞았지만, 정작 가장 큰 고통은 다른 곳에 있었다. 아이들을 마주하는 것은, 한때의 내가 침식하는 모습을 뜬눈으로 지켜보는 일이었다. 소년의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이 깎여 지금의 내가 되었나. 나는 그 칼의 실재를 애써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휘두르기까지 해야 했다. 시간이 지나 나도 그 가해가 속 편하다고 느꼈을 때, 칼끝은 다시 나에게로 향했다. 이것이 나를 가장 아프게 찔렀다. 아이들의 역학 따위는 나머지 일이었다.
그렇게 행복하게 불행하게 잘 산다, 나는. 그러나 너는 그렇게 살지 않기를 바랐다. 너의 삶 역시 행복과 불행의 뒤엉킴일 테지만, 네가 아직 그것을 모르기를 바랐다. 너와 나의 눈물은 농도가 다르기를 바랐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난 지금은, 그 바람마저도 이기적이었음을 느낀다. 소년의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은 그들도 모른다. 아이들은 어련히 나와 다르게 운다. 아이들에 대한 바람은 그냥 내 자신에 대한 바람이었다.
윗사람을 대하는 것이 편하다. 배우려는 자세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아랫사람을 대할 일이 많아진다. 배움이 되는 것 역시 잘 배워야 한다. 나를 위함이자 나를 믿고 따를 이들을 위함이다.
20.01.25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