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모리 관리가 필요한 건 컴퓨터 뿐만이 아니야
고양이 유튜브를 시작한 것은 순전히 남편의 권유 때문이었다. 왜 콕 찝어 '고양이'고, '유튜브'인지는 모르겠다. 키우는 고양이가 있으니까? 편집을 할 줄 아니까? 결혼하고 더욱 가까이서 나를 쭉 봐오던 남편은 내게, 빡빡하게 매일 출퇴근을 맞춰야 하는 회사생활보다 집에서 자유롭게 창작하는 일이 더 맞을 것 같다고 했다. 내가 공시생일 때도 남편은 그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자기네 집에 와서 고양이를 찍어가서 빨리 유튜브를 시작하라고. 이젠 핑계가 없어졌다. 자기네 집이 우리집이 됐으니까. 지금 빨리 찍어!, 어..어... 나는 어느 순간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고 있었다.
방송국에서의 편집은 지겨웠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중노동인지 잘 알았다. 그게 싫어서 딴 일 하려고 공부하는 거 안 보여? 처음엔 딱 잘라 거절했다. 이왕 한다면 좀 더 그럴싸하고 베네핏이 커 보이는 뷰튜브나 주절주절 내 썰들을 풀고 공유하는 썰튜브를 하고 싶었다. 남편은 왜인지 모르게 확고했다. "고양이 유튜브를 해야 해." 그렇게 나는 반쯤 세뇌를 당한 것 같다.
나름 방송국에서 일했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저 정도는 해야지- 나만의 쪼를 입으로 나불나불 대며 시작을 뭉개고 있었다. 하지만 난 안다. 방송국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이 어쨌거나 어느 정도의 기본 때깔이 나는 것은 편집의 힘이 아니다. CG팀과 작가의 자막이 열일을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서는 절대로 그렇게 뽑아낼 수 없다. 그래서 직면하고 싶지 않았다. 내 한계를 내 눈으로 확인하는 것 같았다. 무작정 뭉갰다. 우리집 고양이는 다른 집보다 얌전해서 찍을 게 없다, 왠만한 퀄리티가 나지 않으면 시작도 안 하고 싶어, 가진 노트북도 구려서 편집 툴이 안 돌아가- 그런 핑계로 미뤘다. 나 아직 공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도 좋은 핑곗거리였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나 잔뜩 부푼 빵 봉지처럼 배터리가 빵빵해진 내 노트북을 보고, 남편은 노트북을 사줬다. 유튜브 할 거면 사 줄거야, 할 거야 말 거야 딱 말해- 하는 남편에게 당연히 유튜브를 하겠지만 공부용으로도 쓰고 싶으니 필기가 되는 S펜 기능이 되는 걸로 사달라고 했다. 괜히 한발 더 걸쳐두고 싶었다. 유튜브 용으로만 사준다고 하면 왠지 모르게 겁이 났다. 하지만 그 걸쳐둔 한발 때문에 우린 옥신각신 열띤 토론을 벌여야 했다.
- 아니 그림 그리는 그게 대체 왜 필요해 / 난 그게 갖고 싶다니까?
- 그 기능만 포기하면 더 좋은 걸 살 수 있어. 목적을 하나만 골라 / 이왕 사줄 거 내가 갖고 싶은 걸 사줘
- 램은 8기가로 가야 해 / 무슨 소리야, 편집하는 노트북에 램이 16기가는 되어야지!
결국, 램은 포기했지만 S펜을 가졌다. 떨떠름해하는 남편("아, 이거 아닌데")과 손을 잡고 매장으로 갔다. 알고는 갔지만 비싸긴 비쌌다, 많이. 역시 반대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느 정도의 스펙과 금액을 결정하고 갔지만 마지막에 또 한참을 용량으로 다퉜다. 난 무조건 고용량! 남편은 아무리 그래도 이 가격에 이 용량의 업그레이드는 돈 낭비야- 이야기가 길어지니 신나는 표정으로 기기 포장을 준비하던 직원분이 슬그머니 자리를 비워줬다. 난 내 돈을 할부로 보태더라도 고용량으로 사고 싶었는데, 마지막은 양보해야 했다. 아니 살면서 노트북을 몇 번이나 산다고, 욕심내더라도 진짜 맘에 쏙 드는 옵션으로 사고 싶었는데. 아무리 남편이 사주는 것이라고 해도, 내가 돈을 보탠다고 해도, 우리는 부부니까 경제공동체였다. 당장 나만 좋을 수는 없었다.
대신 남편은 UFS라는 SD카드처럼 생긴 조그만 메모리칩을 사서 노트북에 넣어줬다. 드라이브가 쪼개진 채로 늘어난 256기가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모두가 양보를 했지만, 어느 누구 하나 백 퍼센트 만족하지 못한 새 노트북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본체보다 용량이 넉넉한 UFS에 원드라이브 폴더를 동기화하고 새 노트북에 기본에 쓰던 세팅 구성을 정리하고 있는데, 윈도우 탐색기 창이 멈췄다. 어라, 동기화는 무린가? 본체에 원드라이브 폴더를 옮겨서 새로 동기화하고 UFS는 다른 걸로 정리했다. 다른 작업을 한참 하다 다시 탐색기 창을 켰는데, 새로 산 노트북이 또 멈췄다. 램 때문인가, 용량 때문일까? 노트북 설정을 여기저기 눌러보며 살펴보다 화가 났다. 노트북을 쓰는 건 난데 왜 이 정도 램이면, 이 정도 용량이면 충분하다고 맘대로 말하지? 이것 봐, 또 멈췄잖아!
남편은 값비싼 노트북을 사주고도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예산이 부족해 그랬으니 다음엔 더 비싼, 꼭 여보가 갖고 싶어 하는 걸로 사준다고 했다. 나도 엄청 많이 미안했다. 하지만 또 멈춘 윈도우 탐색기 창을 보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걸 어떻게 쓰지. 새 노트북이 대체 왜 이러지. 노트북을 세 번쯤 새로 밀고 세팅하고도, 또 윈도우가 뻗어버려 강제 재부팅을 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노트북에 애증이 생겼다. 남편이 어떻게 모은 돈으로 사준 건데, 아니 근데 이게 이렇게까지 안 돌아가는 스펙이라고?
손이 안 가서 한참을 새 노트북 그대로 방치했다. 유튜브는 집 컴퓨터로 시작했다. 유튜브도 중간에 노트북처럼 한 1년 방치된 적이 있었다. 그래도 곧 다시 시작했다. 나는 다시 노트북이 필요해졌다.
해결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문제는 UFS칩이었다. 단순 저장용도로만 UFS칩을 사용하면 됐다. 어떤 파일을 여는데 그 파일이 UFS에 있거나, 동기화가 걸릴 때 그 파일이 UFS에 걸려있는 등의 어떤 형태가 되었든 처리 과정의 경로에 파일이 UFS에 있지 않기만 하면 됐다. 드라이브 과부하를 막기 위해서인지 일정 시간이 지나면 UFS칩이 자동으로 슬립모드가 되는 것 같았다. 제대로 들어가서 파일을 여는 건 괜찮았다. 그렇지만, 파일 실행의 경로에서 슬립모드에 있는 UFS파일 소스가 건드려지면 윈도우가 멈췄다.
결국, 쓸 때 쓰는 건 괜찮은데, 쓰지 않을 때는 슬립모드로 아예 접근이 꺼진다고 생각해야 했다. 원래 쓰려고 했던 용도에서 생각을 바꿔, 편집이 끝난 유튜브 회차의 편집본들을 백업하는 용도로만 사용했다. 언젠가 필요한 시점이 올지도 모르니, 한 번에 지워버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클라우드나 드라이브에 보관하기에는 자리만 차지하는 것들을 옮겨 백업했다. 마치 외장하드처럼.
정리하고 나니, 노트북은 놀라울 정도의 고성능을 보여줬다. 집에서 쓰던 데스크탑 보다 더 빠르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맞아, 살 때도 그랬다. 데스크탑 보다 좋은 스펙이라고 했다. 윈도우를 밀지도 않았고, 다른 프로그램을 지웠다 깔거나 하지도 않았고, 그저 각자의 자리와 스펙에 맞는 역할을 제대로 주기만 했을 뿐인데 노트북은 마치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냥 쌩쌩 잘만 돌아갔다. 난 느려터진 학교 데스크탑을 반납해버리고 연구실에서 업무용으로도 썼다. 그 후 채널에 올라간 많은 고양이 영상들과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들도 다 남편이 사준 고마운 노트북 덕분에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한동안에 나도 빠져 있었던 미니멀리스트의 삶. 그건 단순히 깔끔한 인테리어, 트렌드 스타일 뭐 그런 게 아니다.
컴퓨터의 저장 경로가 엉켜 괜한 곳에 메모리를 잡아먹어 뻑나지 않도록 하는 것. 출근길 행동반경에서 물건들이 이리 엉켜 저리 설켜 차키를 못 찾고 결혼반지를 못 찾아 헤매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 각자의 역할과 자리를 정해주고 그대로 정돈해주어 다른 불필요한 에너지의 소모를 줄이는 과정. 정말 집중해야 하는 일에 에너지를 제대로 몰아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미니멀과 메모리 관리가 필요한 건 노트북뿐만이 아니다.
할 땐 하고 하지 않을 땐 과감하게 슬립모드로 돌려, 일과 쉼을 확실하게 구별해주어야 한다. 중간중간 다 끝난 일은 매듭지어 정리하고, 일이 끝났으면 확실하게 잘 쉬어주어 내 자신도 관리해야 한다. 이 일 하다 저 일 하다 어영부영 결국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에너지만 잔뜩 소비하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둘 다 과부하만 온다. 노트북은 나중에 바꿀 수라도 있지만, 내 하드웨어는 이제와서 바꿀 수도 없다.
기계나 사람이나 틈틈이 관리를 잘 해줘야 고장 없이 오래오래 잘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