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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빨강 Oct 18. 2021

# 사실은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친구들은 바빠지고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챙겨야 할 역할들이 많아졌다. 간만에 만나는 자리에서도 친구들은 종종 그 역할들을 숙제처럼 달고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회사 일을 달고 나오더니, 이제는 아이들을 하나씩 달고 나온다. 나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회사에 자신의 아이를 데려오는 일은 너무 싫었다. 기본적으로 일하는 사람 대 사람 사이에서, 누군가의 엄마 혹은 아빠로서의 그 사람을 강제로 봐야 하는, 공적인 자리에서 사적인 공기가 섞여 흐르는 기류 그 자체가 나에겐 너무 거북했다. 이는 첫 번째 회사에서 경험한 트라우마 때문일 수도 있겠다.

  현장에서 자기 억울하다고 내게 쌍욕을 퍼붓던 팀장 B는, 이제 입봉 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신입의 기획서를 그대로 베껴갔다. 사장은 그것도 그의 능력이라고 했다. 사무실에 나와 단둘이만 남게 되면 그는 테이블 위에 양말 벗은 발을 턱 하니 올려두고 발톱을 깎곤 했다. 그리곤 자기 자리의 쓰레기통을 왜 비워주지 않느냐고 타박했다. 나는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오는 그의 아내에게 팀장님 외근 가셨다, 정말로 출근한 거 맞으시다- 같은 대답을 반복해야 하는 전화를 받곤 했다. 그런 그도 좋은 아빠였다.

  그는 주말에 종종 아이를 데려오곤 했는데, 아이에게 그분은 너무도 보기 좋은 전형적인 따스한 아빠의 모습이었다. 너네 아빠가 나를 쥐 잡는 듯 괴롭힌단다, 아가? 그리고 니 얼굴에도 니네 아빠가 겹쳐 보이네? 라고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회사에 있는 모두가 아이고, 애가 너무 이쁘다, 귀엽다 어화둥둥 하고 있었다. 나는 또 나만, 못된 아이가 된 느낌이었다.

  사장은 B팀장의 끊임없는 갈굼으로 괴로움을 토로하는 나를 A팀장 밑으로 옮겨주면서 말했다. '저 사람은 누군가의 아빠고 한 집안의 가장이다'. 너를 자르면 너 하나 자르는 거지만, 내가 저 사람을 자르면 난 저 사람 가족 모두를 자르게 되는 무거운 책임감이 따라붙기에, 다른 결정은 할 수가 없고 B팀장에게 한번 더 경고를 따끔하게 주겠다고 했다.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리라 희망한다고 했다. 이건 솔직한 설명인 걸까, 진부한 핑곗거리인 걸까. 어쨌든 사장이 누구와 더 오래 함께하게 될 것인가는 확실하게 보였다. 난 그때부터 이직을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의구심이 들었다. 아이를 가진 가족이 대체 뭐라고 사회에서도 용인되는 방패가 되는 거지?


  친구 혹은 친구 남편을 쏙 빼닮은 아이들이 처음에는 아주 귀여웠다. 하지만 간만에 보는 친구들과 힘들게 만든 자리에 함께하게 된 아이가 이거 해줘, 저거 해줘 요구하며 징징거리는 걸 보고 있는 건 아주 피곤했다. 처음에는 나도 그렇지만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나오긴 했지만, 이렇게 카페에서 한적하게 있는 게 정말로 간만이라며 행복해하는 친구를 위해 내가 친구네 아기를 봐주기도 했다.

  한번은 아기가 카페 옥상 테라스를 구석구석 훑으며 뛰어다니다가 이 테이블, 저 테이블 기웃거렸다. 나는 그 집 아기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며 뛰어다녔다. 화장실 가고 싶어-라는 아기의 시그널에 이때다 싶어 친구에게 갔다. 아기가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니 이제 엄마인 너가 맡으라고 말했다. 친구는 그게 아이의 거짓말이라고 했다. “아니, 그래도 아기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잖아”, “그거 뻥이라니까?”

  못 믿겠으면 나더러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가보라고 했다. 아이는 다리를 베베 꼬며 화장실 화장실 노래를 불렀다. 쟤는 정말 엄마가 맞는 걸까? 애 손을 잡고 화장실로 같이 들어가 난생 처음으로 남의 집 애 화장실 볼일 보는 것을 진땀을 흘리며 도와줬다. 친구 말이 맞았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옷을 다시 입혀주고 손을 씻고 화장실을 나섰는데 아이는 또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 과정을 정확하게 다섯 번은 넘게 반복했고,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다. 이 모든 걸 미리 꿰뚫어 보다니 친구는 애 엄마가 맞나 보다.

  아기가 있는 다른 친구들이 이 일화를 듣고 그건 그 친구가 너무 했다며 대신 화를 내주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다른 친구의 아기가 있었고, 결국은 또 다른 형태의 피로감이 반복됐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아기를 맡았지만 아기는 울고 떼를 쓰고 무언가를 입에 마구 집어넣으려 하고 뛰어다니다 넘어지려 했다. 모두가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분명히 약속한 인원이 다 모였는데, 그 인원이 모두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 나는 아기가 있는 모임은 절대로 가지 않겠다 다짐했다.


  최근에 다른 친구가 우리 집 맞은편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친구와 함께 먹을 걸 사 들고 놀러 갔다. 거실은 키즈카페가 따로 없었고, 집주인인 아이는 신나게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귓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고주파 공격을 해댔다. 집구경을 하고 소파에 앉아서 각자의 근황 같은 것들을 공유하며 노닥거리려 하자, 아니나 다를까 애가 사과 줘, 물 줘, 이거 열어줘- 같은 끝없는 요구로 관심을 요구했다. 엄마인 내 친구는 간만에 실컷 보라고 유튜브 키즈 채널을 큰 화면의 티비로 틀어줬다. 금세 잠잠해지나 싶더니 애기는 소파에 앉아 발을 데롱데롱 거리면서 소파 앞에 앉아 있는 내 등을 발끝으로 까딱까딱 건드렸다. 내 애가 아니니 혼을 낼 수도 없고 쥐어박을 수도 없고, 애 엄마 친구는 대체 안 말리고 뭐 하나 짜증만 났다. 슬쩍 자리를 옮겼더니, 이제 애기 발은 또 다른 내 친구 등을 향하고 있었다. 친구와 눈빛 신호를 주고받았다. ‘우리 집으로 가서 드라마나 보면서 놀래?’, ‘ㅇㅇㅇㅇ. 빨리빨리’

  이제 친구 남편도 왔고 밤도 늦었으니 우린 이만 가겠다고 일어났다. 아쉬워하는 친구가 8시 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가냐고 마중 나갈 테니 함께 가자고 했다. 퇴근 후 지친 얼굴로 옆에 앉아 있던 오빠가 말했다. “그럼 나는?”, 마지막 블록의 도미노가 쓰러지듯 아기도 말했다. “나는?”

  우리는 한 손에 아기 킥보드를 든 친구네 오빠를 필두로 줄줄이 소세지로 함께 묶여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다. 내리자마자 들이마신 밤공기가 차가웠다. 아기 엄마인 친구가 오빠를 보더니 춥지 않냐고 물었다. 그 오빠는 친구 점퍼과 아기 옷, 심지어 아기 킥보드까지 야무지게 챙겨나오면서도 정작 자기 겉옷 하나 입지 않은 반팔차림이었다. 오빠는 괜찮다고 했다. 아기는 신이 나서 용수철처럼 튀어 나갔다. 친구가 아기에게 따라 붙었고, 오빠는 우리와 함께 걸으면서 회사에서 힘들었던 일화를 아주 짧게 토로했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내리막길에서 오빠는, 킥보드에서 굴러떨어지려는 아기에게 순간이동 못지않은 놀라운 속도로 달려가 안전하게 아기를 캐치해냈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눈이 동그래져 있는 우리 옆엔, 언제 왔는지 모르게 매우 익숙하다는 표정을 한 아기 엄마 친구가 걷고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한동네에서 살게 될지는 몰랐지, 고등학생 때 생각나지 않냐 하하하 같은 잡담을 나누면서 길지 않은 산책로를 천천히 걸어오는데, 우리 옆의 대화 상대는 친구가 되기도 했고 친구 남편이 되기도 했다. 친구가 우리 옆에 있을 때는 친구 남편이 아기를 마킹했고, 친구 남편이 우리 옆에 있을 때는 친구가 아기를 마킹했다. 둘은 정말이지 환상의 짝꿍이었다. 아까 그 집에 있을 때는 아기가 쿵쿵 거리는 것도 막지 않고 소파에서 우리 등에 발가락을 콩콩 찍어대고 있는 것도 뭐라 하지 않아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땐 보이지 않던 게 밖으로 나오니 보이더라. 사실은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던 거였다.


  마지막 신호등 앞. 횡단보도만 보면 튀어 나가던 용수철 아기가 튀어 나가지 않고 멀뚱멀뚱 서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몸을 베베 꼬면서 웅얼거렸다. 응, 뭐라고? 잘 안 들려. "이모들 또 놀러와요"


  꺅. 이렇게 귀여울 수가. 그 쪼그마한 입에서 입을 삐죽삐죽 대며 수줍게 용기 내서 말하는 그 한마디가 뭐라고, 아파트 지구 다 뿌셔 소리가 나올 만큼 귀여웠다. 다 들었으면서 뭐라고 했어- 를 반복하면서 여러 번 물었다. 또 놀러 오란다. 정말로 그 말 한마디가 뭐라고, 여태까지 귀에 박혀있던 고주파의 공격도 발가락 공격도 한 여름에 눈 녹듯 싹 사라졌다. 야 방금 들었어? 우리더러 또 놀러 오래. 응, 우리 또 갈게! 또 봐! 돌아오는 길 내내 아기 너무 귀엽지 않냐고 친구와 발을 동동거렸다. 아기 친구도 아직 표현이 서툴러서 그렇지, 나름 우리와 친해지려고, 엄마 맘 편하게 해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던 거겠지?

  

  한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던데,

  작은 구성원의 가족 단위가 한 아이를 오롯이 키워 내는 게 얼마나 버거운 일일까.


  너무 야박하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이미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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