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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빨강 Aug 19. 2022

# 흥청망청 쓰던 것이 돈인지, 인생인지

  처음 기획자로 입사한 회사에서의 연봉은 1600이었다. 실제로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120만원 남짓.


  지금 생각하면 정말 택 없는 돈이고, 열정페이에 가깝게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일했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엔 그저 기뻤다. 좋아하는 일을 업 삼아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 하나만으로도 너무너무 가슴 벅찼다. 


  어차피 부모님 집에서 얹혀살고 있어서 생활비가 따로 들지도 않았다. 회사에서 점심, 저녁도 다 사주겠다, 10시 이후까지 야근을 하면 택시비도 나왔다. 직속 사수와도 5년 이상의 차이가 나는 완전 꼬꼬마 신입이기에 야근 후의 술자리도 선배들이 다 사줬다. 가끔 “오늘은 니가 내라”며 바득바득 우기는 못된 선배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 하나라도 더 사주고 회식이 끝날 때 택시 타고 가라며 손에 용돈을 꼬옥 쥐여주는 좋은 선배들이 있었다.


  처음엔 이렇게 벌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런 직장이 어디 있어, 지금은 조금 덜 벌어도 돼. 멀리 보자 멀리. 나중엔 또 나아질거야, 해결될거야.


  그때 쯤엔 다꾸에도 취미가 없었다. 일기는 무슨, 캘린더 정리하는 것만 해도 바빴다. 일기를 몇 번 훔쳐 읽힌(?) 경험들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다이어리 관련된 것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다꾸에 쓰는 돈은 더 이상 없었다.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예쁜 카페, 여행지를 찾아다니는 것에는 원래 취미가 없었다. 어차피 일을 하다 보면 내 돈 들이지 않고도 다 하게 되는 것들이었다. 물론 요즘 흔히들 말하든 인-서타 감성과는 많이 다르지만, 애초에 관심이 없던 사람에겐 다 그게 그거였다. 차라리 나는 쇼핑하는 게 좋았다. 옷도 사고, 가방도 사고, 기분 따라 폰 케이스도 한 번씩 바꾸고. 손에 잡히는 뭔가가 내게 남는 게 더 좋았다. 크게 나가는 고정지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명품을 사는 것도 아니었기에 월급이 적어도 그쯤은 무리없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빠서 쇼핑할 시간도 없었다. 그 적은 돈도, 그땐 쓸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 회사에 다니는 동안 돈을 모았을까?  

              

  다음 직장은 프리랜서로 일하게 된 곳이어서 정확한 연봉으로 따질 수는 없지만,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확실히 더 많았다. 직장인들 연봉으로 환산했을 때엔 오른 것이 분명했다. 어째 시간도 전보다 훨씬 여유로워져서 돈 쓸 시간도 많았다. 그전 직장에서는 느끼지 못한 직장인의 여유, 풍족함 같은 것들을 즐기고 싶었다. 그냥 한번 내가 버는 것, 나 쓰고 싶은 대로 맘껏 하고 싶은 데로 써보자고 생각하며 돈과 시간을 펑펑 썼다. 

  그곳은 주급으로 돈이 들어왔다. 왠만한 직장인의 한 달 용돈 정도가 매주매주 새로 들어오는 셈이니 늘 풍족했고 여유가 있었다. 그곳에 다니는 근 3년 동안 나는 돈을 모을 수 있었을까?     


  여전히 내 수중에는 돈 백, 돈 천 같은 '큰' 돈이 없었다. 중학생 무렵의 용돈 투쟁이 생각났다.      

  당장 차를 끌고 다니다가 접촉 사고라고 난다고 생각했을 때의 사고 수습 비용도 내 수중에는 없었다. 지금 당장은 엄빠라는 비빌 언덕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평생 이렇게 살 수 있나? 큰 병이라도 생기면, 어느 순간 덜컥 아픈 곳이라도 생기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나?

  이렇게 쓰다가 그냥 거지가 되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한번 더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이후로 직장생활을 더 하지 않았나. 이직을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연봉을 올리면 올렸지 낮추어 간 적은 없었다. 그러면 적어도 이전 직장과 비교해서 오른 연봉의 금액만큼이라도 돈을 모았어야 하는데, 지금 가진 것은 얼마지? 

  그렇게 쇼핑을 뻔질나게 해댔는데, 내 손에 비싼 가방이라도 하나 남은 게 있나? 크게 다녀온 여행이라도 있었나?

  지금의 직장은 적어도 내 미래를 보장해줄 만큼 안정적인가?

  

  답은 하나도 없는 채로, 나는 여전히 다음 달을 목 빠지게 기다리며 사는 사람이었다.

  일을 업 삼아 돈을 버는 것인지,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을 업으로 삼는 것인지. 꿈꾸던 미래는 온데간데 없고, 그저 시간이 흘러 다음달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쯤되니 내가 흥청망청 써오던 것이 돈인지, 인생인지 모르게 되었다.     


  마약 같은 '다음 달 월급'이라는 달콤함에 현재를 저당잡힌 채, 회사생활과 지금의 내 생활에 불만이 있어도 여전히 다음 달을 기다리며 꾸역꾸역 버티며 지내야만 했다. 쨌든 기다리면 다음 달 월급이 들어오니까. 

  어라, 이렇게 사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 당신이 뭔가를 살때, 돈을 주고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돈을 벌기 위해 쓴 당신의 인생으로 사는 것이다.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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