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문구류 사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지금 다시 유행하는 ‘다꾸’니 뭐니 하는 것들을 그때 다 섭렵했다.
다이어리 그게 뭐라고 그냥 노트에다가 일기를 끼적이는 게 왜 돈이 많이 든다는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다이어리는 절대 하나의 노트에 펜 하나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주 최소한으로만 잡아도 세 가지 이상의 색은 있어야, 그리고 같은 색이어도 굵기가 다른 펜들이 필요하다. 정해진 것은 없지만 펜은 다다익선이니까. 스티커도 소스 같은 것이다. 꼭 필요한 스티커- 같은 것이 있는 게 아니다. 그냥 많으면 많을 수록, 종류가 다양하면 다양할 수록 좋은 것이다. 재료가 많을 수록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나오는 법이다. 그때그때의 감정이나 기분 상태를 적절하게 표현해줄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이 재료를 갖추어두고, 그 중에서 적절한 것들을 한 두개 골라 쓰는 것이다. 너무 아끼는 스티커는 가지고 있다고 마구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관상용와 별개로 쓰는 것 전용으로 또 하나를 더 사면 모를까. 아마 알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하지만 이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많을 것 같고, 그들은 전혀 이해를 할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범주에는 당연히 우리 엄마도 들어가 있었다.
다방면으로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헛짓거리’ 취미를 계속해서 바꿔가며 즐기는 나를, 엄마는 내가 태어난 이례로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쭉 봐왔을 것이다. 내 소비패턴과 습관을 제일 잘 알고 있던 엄마는, 내가 중학생이 된 이후로도 한참동안 주별로 용돈을 줬다.
한 달치의 금액을 모두 더해서 생각하면, 다른 친구들이 받는 용돈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한 주가 더 있는 달은 요돈이 조금 더 많은 달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도토리 키재기고, 많이 받든 적게 받든 용돈은 늘 부족한 게 국룰이다. 오랜 쟁취 끝에 나는, 주별 용돈을 한달 단위의 용돈으로 받는 시스템으로 일구어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받는 용돈은 감질맛이 났었다. 뭘 좀 사려고 하면 모자라고, 모았다 사야지-라고 생각하면 일주일 동안 야금야금 돈 쓸 일들이 있어, 돈은 잘 모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계획을 세우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 한달에 한번 받는 고정용돈은, 그게 뭐라고 삶의 질이 윤택해지는 것 같았다.
매달 나오는 패션잡지나 오빠들이 나오는 잡지, 편지지 잡지 같은 것들을 이제는 한방에 살 수 있었다. 용돈을 받는 날이면 그날은 학교 앞 문방구에서 죽치고 있는 날이다. 새로 나온 문구류는 무엇이 있나, 사려고 했던 것들을 지금은 돈이 있을 '때' 바로 사버릴까 아니면 말까.
그렇게 한달 용돈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을 훌쩍 넘게 그 자리에서 탕진해 버린 후 다음 용돈을 받을 때까지, 아주 조금 남은 돈을 야금야금 까먹으며 살았다. 한번 탕진을 하고 나면 그 달 내에 무언가를 더 산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금 못사는 것들은 잘 정리해서 머릿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잘 정리해두었다. 다음 달 용돈을 받거나, 다른 돈이 들어오면 바로 기억에서 인출해내어 바로 살 수 있도록. 그렇게 미리 다음 달의 탕진을 예상하며 사는 것이다.
나는 대학생 때도 용돈을 받아 썼는데, 받자마자 절반은 사고 싶었던 옷과 화장품을 우선 사고 봤다. 심지어 그때 나는 자취를 하고 있었다. 돈이 없으면 그냥 쫄딱 굶어야 하는 생활이었다. 다음 달엔 진짜 제발 그러지 말자, 생활비는 좀 넉넉하게 남겨놓고 사자-라고 결심했지만, 새로운 달이 되면 지난 달과 똑같이 또 사고 싶은 것들을 잔뜩 샀다. 그래도 매달 그렇게 사고 싶은 것들을 사는 순간들이 행복했다.
비싸거나 브랜드 값을 하는 좋은 옷과 화장품들을 샀던 것은 딱히 아니었다. 옷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사고 화장품은 로드샵 할인할 때를 기다려서 샀다.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도 내가 엄청나게 소비가 과하다거나 씀씀이가 크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때는 막연히, 내 용돈이 적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추가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나중에 직장인이 되면 이러지 않을 것이고, 조금 더 계획적으로 살 수 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좀 더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면 많은 것들이 해결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늘 다음 달, 다음 달- 하며 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