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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빨강 Oct 26. 2022

# 연봉이 늘어도 늘 돈은 모자라는 이유

숙제 같은 소비의 실체

  예전에는 인터넷 쇼핑으로도 옷을 저렴하게 사서 잘 입었다. 이젠 나이도 있고 직장도 다니고 있으니 어느 정도의 때깔은 나는 옷이었으면 하는데, 인터넷 쇼핑으로 사는 옷들은 그게 쉽지가 않다. 프리스타일 사이즈 하나로도 무난하게 잘 입고 다니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 프리스타일은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 딱 맞겠다 싶어서 사면 아동복 사이즈고, 퐁당하게 품이 좀 있어 보이는 걸 고르면 세상 세상 펑퍼짐한 잠옷이 따로 없다. 잠옷을 입고 나다닐 순 없지 않는가. 여러 경로를 통해 또 다른 옷들을 산다. 지향하는 바는 꾸안꾸인데 어째 그 꾸안꾸가 꾸며도 꾸며도 '안' 꾸민 것 같다의 꾸안꾸인가. 그렇게 계속 실패를 반복하고, 옷장엔 잠옷 아닌 잠옷들만 가득 쌓여간다. 

  화장품도 마찬가지. 로드샵 마스카라 50% 할인하던 것 하나를 바닥까지 박박 잘 긁어쓰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눈가에 닿는 건 좋은 걸 쓰고 싶다. 조금만 오래됐다 싶으면 손이 잘 안 가고 안에 남은 것이 많아도 버리게 된다. 다들 그렇게 하라고들 하더라고?

  마스카라만으로는 부족하니 속눈썹 연장도 하고 속눈썹 펌도 가끔한다. 회사 다니면서는 만사가 너무 귀찮았으니, 얼굴에 잠시마나 생기를 새겨버릴 수 있는 일련의 과정들에 돈을 쓰는 것이 아깝지가 않다.


  등등의 이유로 내 소비는 늘어난 월급만큼 정확하게 알아서 인상된 금액으로 자리 잡았다. 나가는 항목은 동일한 것 같은데, 요구되는 퀄리티가 높아져서 돈이 더 많이 나간다. 쉽게 말해 연봉이 오른 것처럼 씀씀이도, 간도 함께 커지는 게 느껴진다.  

  '회사 다니면 원래 버는 만큼 나가는 돈도 많아진다. 품위유지비라는 게 들지 않냐. 그래도 한번 제대로 돈 쓰면 두고두고 잘 입고 잘 쓰지 않냐.'


  뭐, 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럼 월급 인상률도 매해 알아서 커지나? 늘어난 내 씀씀이처럼?


  환경이 바뀌면 사람도 바뀌듯, 연봉이 바뀌어도 사람이 바뀐다.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꼭 사야만 하는 것들이 뭐지?

  좀 없이 살면 안 되나, 안 사면 큰일나는 것들이 뭐가 있지?

     

  평소 피부 화장은 쿠션에 컨실러 하나면 끝난다. 하지만 집에 파운데이션이 아예 없는 건 좀 말이 안 돼. 하나쯤은 사둬야 할 것 같아서 당장 쓸 일도 없는데 하나 산다. 하나 사고 보니 색상이 좀 안 맞아. 원래 파운데이션은 섞어 쓰는 거니까, 섞어 쓸만한 비비나 파운데이션을 하나 더 산다. 

  옷도 마찬가지다. 당장 내일 입고 싶은, 다음 주에 있을 결혼식에 입고 참석할 옷이 없어서 사는 것이 아니다. 눈에 띄는 족족 생각나는 ‘언젠가’ 있을 모든 사회적 상황에 대한 옷을 하나씩 하나씩 사모으고 있다. 옷만 사면 끝인가. 옷에 따라 맞는 신발도 다르지. 분명히 매일 신고 다니는 것은 편한 운동화 한두켤레가 전부인데, 색상별로 구두 한두켤레, 단화 한두켤레는 제대로 된 것이 있어야지.

  하얀 블라우스 안에 받쳐입을 흰색 나시 하나를 사면 끝나는 것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깔별로 사두어야 맘이 편하다. 거 이너 하나 비싸지도 않다. 개당 7천원이니, 사는 김에 미리 사두면 배송료도 아끼고 편한 것 아닌가. 패션의 완성은 이런 자잘한 디테일에서 나오니까. 

  그렇게 인터넷에서 옷과 화장품 등등의 것들을 잔뜩잔뜩 사는데, 당장 내일 입고 나갈 게 없다. 계속 눈에 보이는 화장품 신상들은 다 우리집에 없는 것들이다.


  누구네 인생템이네, 필수템이네 해서 사모은 화장품들은 유통기한 내도록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주는 진열품이 되었다. 이너를 받쳐입는 옷은 옷장 안에 그거 딱 하나 뿐인데, 이너나시는 깔별로 있다. 아직 한번도 입지 않은 모두 새것들이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달라지고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했던 물건이었는데, 내게 달라진 건 복작복작 짐만 더 늘어난 내 방 뿐. 

  쌓여진 물건들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일단 안심은 되지. 밥 한 술에 매달아놓은 굴비 한번 쳐다보고 꿀꺽, 자린고비가 따로 없는 삶이다. 이쯤돼니 소비의 주체가 나인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삶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월급도 내 것이고, 이걸 쓰는 것도 나이고, 모두 날 위해 산 내 물건들인데. 과연 난 행복한가?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화장품 사는 걸, 옷 사는 걸, 네일하는 걸, 내 수중에서 돈 나가는 모든 것들을 다 줄여보자고 생각한 것이 아니다.

  내 돈과 시간과 정신을 쓰면서도, 즐겁지 않은 쇼핑만 끊어보자.


  분명히 소비를 하면서도 행복하지 않은, 마치 숙제처럼 하고 있는 소비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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