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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마음을 담는 소비 생활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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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김빨강 Oct 28. 2022

# 아껴야 할 때와 잘 써야 할 때는 다르다

돈 잘 쓰는 사람의 비밀

잘 쓰는 것과 아끼는 것. 공존하기 어려운 두 가지를 한 번에 해내기는 얼마나 더 어려운가. 나는 물건 사는 걸 워낙 좋아하는 사람이니, 그쪽 방면으로는 여러모로 도가 튼 사람이라고 자만하던 때가 있었다.

사이트별, 브랜드별로 비교하는 것, 쿠폰 먹이는 것, 적립금 먹이는 것, 되돌려받는 포인트 계산, 배송료가 포함인지 아닌지, 최종가로 따지면 어디서 사는 게 제일 저렴한지 등 10원 단위까지도 비교해서 같은 물건을 가장 저렴한 곳에서 잘 산다고 자부하던 때가 있었다.

한국 사람은 오지랖이라 했던가. 내가 이러다 보니 가격이 더 저렴하거나 혜택을 하나라도 더 받으며 살 수 있는 기회들이 있는데, 눈앞에서 그걸 놓쳐 그냥 제 갚에 물건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진짜 안타까운 순간들이 많았다. 직계가족의 것은 물론이거니와 정신차리고 보면 이모에, 오바 좀 더해서 사돈에 팔촌까지 이건 어디서 사는 게 저렴한지 알아봐달라는 부탁이 들어오던 때가 있었다. 내가 쓸 것도 아닌데 처음보는 낯선 외국 브랜드의 대체 어디다 쓰는 건지도 모르겠는 제품을 실눈뜨고 구글링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면, 이거 구매 대행수수료라도 좀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또 만난 것이다. 내 소비관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새로운 종류의 사람들을.

괜찮은 뷰티 디바이스가 있었다. 다른 디바이스와 달리 크기도 부담스럽지 않아 한 손에 쏙 들어와서 화장대 위에 올려놓고 매일 꾸준히 쓰기도 좋아보였다. 무엇보다 가격이 착했다. 엄청난 프로모션도 진행중이었다. 살 거면 프로모션 할 때 사야지, 가만 있어보자 어디서 사야 제일 저렴한가- 한참 서치를 하다 옆자리 직장 동료에게 월루짓을 들켰다. 이럴 땐 공범으로 만들어야지.

"보라씨. 이거 같이 살래요?"

그렇게 영업을 시작해서 내가 직장 동료 것까지 같이 대리 구매를 해주게 되었다. 뭐 여기까지는 왕왕 있던 일이었다.

구매가 끝났고, 이러저러한 알뜰했던 구매 스토리를 공유한 후 동료에게 받아야 할 물건값을 카톡으로 찍어 보냈다. 돈이 들어왔다. 잠시, 금액이 이상한데? 왜 할인 전 금액을 보냈지? 보라씨 돈 잘못 보낸 것 같은데요- 돌아온 대답은 아주 놀라웠다. 원래 물건값을 보낸 거란다. 네? 아니, 그래도 제가 지불한 돈보다 많은데요? 상관이 없다구요...?

그분의 생각은 이러했다. 어차피 본인은 할인율이나 프로모션에 포함된 샘플이나 기타 구성품 같은 것들을 보고 구매를 결정한 것이 아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사는 거고, 본인의 필요에 해당 물건값이 적당하다고 생각했으니 할인율과는 상관없이 원래의 값을 지출하는 것이다-라고 내게 이유를 설명했다. 아니 그래도 지금 당장 몇 만원을 아꼈는데, 추후에 적립금이 얼마가 더 들어오는데-의 계산은 그분의 계산에 들어있지도 않았다. 그분은 해당 제품을 살지 말지의 선택지 보다, 본인이 가던 피부과에 결제하던 금액 중 일부를 그 제품 하나로 조금이라도 대신할 수 있는지의 여부만 고민하고 있었다.

진짜 희한한 계산법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 뒤 나는 보라씨와 비슷한 경제관념을 가진 사람과 결혼했고, 차차 이들의 돈 쓰는 방식을 알게 되었다.

남편도 최저가를 검색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딱히 가격 비교도 하지 않았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으면 본인이 자주 가는 한 사이트에서 물건을 검색 후 바로 결제했다. 자주 사는 것들이 30퍼센트, 50퍼센트 할인을 해도 미리 사두는 법은 없었다. 그냥 살았고, 물건을 다 쓰고 사야 할 때가 되면 가격 안 보고 다시 그걸 주문해서 샀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그게 다 돈 낭비라고 생각했다. 땅을 파봐라 돈이 나오냐, 할인 쿠폰이 있으면 써야지, 이왕 쓰는 것 할인할 때 미리미리 사두면 좋잖아- 내가 더 알쓸하게 더 잘 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 항상 수중에 큰돈과 비상금이 있는 것은 남편과, 나와 같이 뷰티 디바이스를 산 직장 동료 같은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면 격식을 차리는 자리를 급하게 앞두고 백화점 원피스를 가진 현금으로 시원하게 살 수 있는, 부모님 생신 선물로 30씩 50씩 턱턱 바로 현금으로 내놓을 수 있는 건 그들이었다.

그들이 나보다 연봉이 높고, 집안이 부유해서 같은 이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냥 습관 같은 거였다.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 다리를 떠는 습관, 좋은 습관 나쁜 습관 뭐 그런 종류의 일종의 소비습관.

내가 SNS에서 본 자잘자잘한 것들을 여러 사이트 찾아가며 회원가입해서 천원 이천원씩 깎아가며 살 때, 그들은 본인이 지금 당장 쓸 것이 아니고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않았다. 내가 오돌오돌 떨면서 어우 그런 걸 어떻게 사- 하는 큰 돈 나가는 일들을, 그들은 본인이 합당하다고 생각되면 그냥 지출했다.

부자들의 돈 쓰는 법 같은 글에서 본 것 같은 예시들은, 이미 그들이 부자이기에 가능한 방법들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나도 살다가 여유가 좀 생기면 그런 방향으로 차차 바꿔가야겠다고는 생각했다. 먼저 그렇게 바뀌어야 부자의 형태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따지고 보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문제일 텐데, 당장의 자금 상황만 생각하고 이 상황에선 이 방법이 맞는 것이라고 나는 한가지 방법만 고집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3천원 할인 쿠폰과 5퍼센트 할인 쿠폰 중 어느 것이 더 저렴할까-라고 저울질하는 시간, 보험상담에 오케이하면서 개인정보를 넘기면서까지 받아내는 10퍼센트 할인 쿠폰, 추후에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불필요한 보험상담 전화를 받고 거절하는 불필요한 시간과 감정 소모를 감수하면서까지도, 난 지금 당장 내 통장에서 나가는 숫자에만 연연했던 것이다.

아껴야 할 때와 잘 써야 할 때는 분명히 다르다.

확실한 건, 이걸 잘 구별하는 사람들의 수중에 돈이 더 많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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