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록] 영화 X 철학자

#에세이

by 늘보리

✿ 제목 : 철학 시사회

✿ 저자 : 라이너

✿ 출판 : 중앙북스

작가가 누구인지 알고 읽는 책의 가장 좋은 점은, 그 사람의 말투로 읽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도 읽는 내내 "라이너의 컬쳐쇼크" 채널의 유튜브 콘텐츠를 틀어놓은 느낌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책을 전혀 읽지 않던 시절

영화 리뷰어로써 좋아하던 라이너 작가가 책을 발간한다는 소식에 무작정 책을 구매했고,

한동안 이 책은 그저 "굿즈"였다.


이 책이 굿즈가 된 데에는

온갖 철학 용어가 난무하고 아직 보지 않은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초반 진입장벽이 한 몫, 아니 열 몫 했다.


그렇지만 일단 수용하고 읽다보면 보인다.

영화를 좋아하는 당신의 구독자들이 철학과도 친해지게 만들어주려는 작가의 노력이.


작가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철학의 "ㅊ"도 모르는 내가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며 헤겔의 "변증법"에 대해 배우고

데카르트가 말한,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구절의 의미를 알게 됐다.


여기에서 데카르트의 생각이 번뜩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의심하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의심할 수 없는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 ~ 조금 더 과정을 축약해서 말하자면 '의심하고 있는 나'는 의심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것이죠. 나를 의심하는 순간, 동시에 나는 의심하고 있습니다. 사유하는 자신은 의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와 성찰


-


내가 생각하는 철학이란, 다양한 관점에서 "나"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내 삶의 방식이 옳은지 그른지, 내가 추구해야할 가치는 무엇일지와 같은

이러한 철학적인 고민들은 여태껏 당연한 기준이 되었던 나 자신을 한발짝 뒤에서 바라보게 해준다.


작가가 책에서 소개하는 철학이야기 중 가장 오래 머물고 생각하게 한 꼭지는 "페르소나"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쓴 가면, 즉 페르소나가 '껍데기'라면 자아는 '알맹이'일 것입니다. ~ 껍데기조차 '나'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자신을 보다 관조적인 시선으로, 그리고 객관적인 입장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가면을 쓴 자신은 '가짜'가 아닙니다. 가면을 선택하고, 만들고, 능숙하게 쓰고 다니는 사회인.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인 것이죠. 굳이 가면과 자신을 구분할 이유가 있을까요?
- 브루스 웨인의 마지막 선택


나에게는 적어도 하나 이상의 가면이 있고, 그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사회생활을 할 때라고 생각한다.

요즘들어 누군가의 성격에 대해 말할 때 정의마냥 쓰이는 MBTI만 봐도 다르겠구나 느끼는 게,

예를들어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답을 할 때에도

그 기준을 직장동료로 할 때와 친구로 할 때가 답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회사 안과 밖에서의 큰 갭이 사회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건 아닐까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작가는 내게, 가면을 쓴 채로, 그대로 "나"라고 말해준다.


'나'는 가면도, 가면속의 얼굴도 아닙니다. '얼굴 위에 가면을 쓴 나'가 바로 온전한 '나'임을 융의 이야기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나의 가면을, 나의 위선을, 나의 가식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가면과 나를 온전히 분리해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가면 속에서, 안녕을 빕니다.
- 악은 교묘하게 평범함을 가장한다.


내가 작가의 말을 통해 이해한 건,

중요한 것은 내가 쓴 가면이 "얼마나" 두껍냐, 그래서 본래의 내 모습을 "얼마나" 가리고 있느냐 하는 것보다는

그 안의 알맹이는 "무엇"이고 그걸 가리는 껍데기는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느냐는 것이다.


본래의 나는 원하는 바 앞에서 거침없이 돌진하는 불도저같지만

일을 할 땐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신중한 거북이인채로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작가의 말을 빌려,

"오늘도 가면 속에서, 안녕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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