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록] 벤치에 두고 온 옛 연인(夏)

#장편소설

by 늘보리

✿ 제목 : 두고 온 여름

✿ 저자 : 성해나

✿ 출판 : 창비

살아감에 있어 이별이란 부득불, 불가피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크고 작은 이별을 경험하며 성장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렇게 이별한,

과거의 너무나 많은 시간들과 장소에 "두고 온" 인연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한 시절을 공유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면 그들과 어떻게 끝맺었든 그들이 어떻게 지내왔을지, 얼마나 변하고 또 얼마나 그대로일지 궁금해졌다. 헤어진 이들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뉘었다. 다신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한번 쯤은 더 만나도 좋을 사람. 내 삶에서 재하와 재하 어머니는 언제나 전자였다가, 언제나 후자가 되곤 했다.
- 기하


-


소설에선 인연을 사진으로 기억한다.


사진 속에서 새 아버지는 저와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습니다. 부드럽게 미소 지은 채 손을 맞잡은 세 사람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버티지 못하고 놓아버린 것들, 가중한 책임을 이기지 못해 도망쳐버린 것들은 다 지워지고, 그 자리에 꿈결같이 묘연한 한여름의 오후만이 남습니다.
이편에서 왔다가 저편으로 홀연히 사라지는 것들.
- 재하


예전에 알던 지인 중에 함께 먹은 음식을 꼭 휴대폰으로 사진 찍던 어떤 남자가 있었다.

그 당시엔 음식사진을 남겨놓는 동성 친구들은 간혹 있었어도

이성 중엔 거의 없어서 그에게 그걸 왜 찍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내게, '사진을 다시보면 언제 누구와 먹었던 음식인지 기억이 나기 때문'이라고 답해줬다.


그 후로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음식 사진을 찍지 않지만

아주 가끔 누군가에게 '보고'할 요량으로 찍어뒀던 사진을 사진첩에서 우연히 발견할 때면

그 음식에 담긴 히스토리가 눈앞에 촤르륵 펼쳐진다.

"그래, 오빠 말이 맞네."


-


소설에선 인연을 어느 공간으로 기억한다.


예전에 영화에서 보았던가, 팟캐스트에서 들었던가 아무튼 어딘가에서 알게 되어 나에게 콕 박힌 말이 있다.

연인간에 이별을 하면 그 이별장소에 지난 연인을 두고가는 것이고 한동안은 그가 거기에 남아있는 거라고.


나도 꽤 오랜시간 집앞 공원 벤치에 지난 연인이 앉아있었다.

지금은 그 앞을 아무리 오가도, 심지어 그 벤치에 앉아있어도 그는 없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는 평생 그 자리에 있는걸지도 모른다.

내가 다른 연인과 손을 잡고 그 앞을 지날 때도,

벤치 옆자리에 앉아 휴대폰 너머로 또다른 연인과 환담을 나눌때도

그는 여전히 꼼짝않고 남아있을 뿐.

거기에 한동안 머물렀다 사라진 건 어쩌면 "그"가 아니라 "나"였는지도 모른다.


그날 그 벤치에 두고 온 그에게 전할 수 없기 때문에, 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잘 지내느냐고. 잘 지내라고.


누구든 그곳에서는 더이상 슬프지 않기를 바라며 오오누키 씨에게 편지를 건넸습니다. 미처 못다 한 말이 봉해진 편지를요.
- 재하


-


책이 남긴 여운은,

잠시동안 나를 타임머신에 태워, 두고 온 인연에게 다녀오게 했다.


그때의 내가 이랬더라면, 너가 저랬더라면.

하면서 달라졌을 지금의 우리를 그려보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아마 똑같은 선택을 하고 지금처럼 똑같이 지나간 그를 기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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