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 제목 :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저자 : 양귀자
✿ 출판 : 쓰다
책에는 조용하지만 강한 힘이 있다.
이건 내가 활자 읽기를 좋아하게 되면서 체감한 점이다.
나는 본래, 책을 좋아하거나 글 쓰는 사람들을 얕잡아 보는 말인,
소위 "글쟁이"들을 약자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매체에서 그려지는 글쟁이의 프로토타입이
바깥 활동을 하지 않아 파리한 피부색의 약골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러한 외형을 가진 이들의 신체적인 능력만 보면 약자가 맞을 지 모르지만
그들이 행사하는 영향력 부분에선 결코 약자라고 말할 수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은,
연단에 선 사람처럼 단호하고 명확한 어조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도 있지만
최면술사처럼 이야기 속에 은근하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침투시킬 수도 있다.
그 의도가 관통했다면 후자가 더 무서운 것이다.
이 책 역시 자극적인 소재에 이끌려 이야기에 정신없이 몰입하다 보면
젠더폭력이라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 작가가 비판하고 있음을 깨우치게 된다.
앞서 말한 후자에 가깝다.
나는 나를 건설한다. 이것이 운명론자들의 비굴한 굴복과 내 태도가 다른 점이다.
나는 운명을 거부한다. 절망의 텍스트는 그러므로 나의 것이 아니라 당신들의 것이다.
- 절망의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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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메세지는 강렬하다.
스스로를 신에 가까운 존재로 여기는 소설의 주인공 "강민주"는 그릇된 사상을 가졌다.
소설은 그런 강민주가 유명 배우 "백승하"에게 행한 납치와 감금,
즉, 스스로 정의하는 '신으로 부터 부여받은 초월자로써의 응징'이자 '남자들에 대한 단죄'를 통해
남성중심사회에서의 여성폭력를 비판하고자 한다.
이 책이 처음 발간 된 시기는 1992년이라고 한다.
지금도 뜨거운 사안인 젠더 이슈에 대해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전에
이렇게 단호하고 명확한 어조로 목소리를 냈다는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행보가 아닐 수 없다.
"그 말에 약간의 수정은 있어야겠지만, 그 둘 다가 모두 나의 진짜 모습이지요. 진리에의 탐구, 그리고 남자들과의 전쟁, 이 두 가지가 모두 내 일생의 과제니까요."
"남자들과의 전쟁? 그건 무슨 뜻이오?"
"말 그대로 해석하시면 됩니다. 나는 억압받는 자들 쪽에 서 있어요. 진실을 향한 끝없는 모색과 투쟁이 결국은 이 세상의 불평등을 없애려는 노력인 것은 당신도 알고 있겠지요. 힘없는 집단에 가해지는 착취와 학대를 단죄하는 정의의 실현일 수도 있고요."
- 황홀한 비극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듣고 이과적으로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며 비웃던 때를 생각해보면
여전히 펜과 칼은 물리적으로 비견할 수 있는 도구는 아니지만,
지금의 나는 펜으로 상대해야만 하는 싸움도 있다고 확언한다.
작가는 부조리한 시대를 살아가며 세상을 향해 펜을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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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여성이지만,
여성의 성평등에 대해 주장하는 "페미니즘"이라는 이 단어가 참 조심스럽다.
그건 아마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성평등에서 더 나아가 여성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본래 의도에서 조금 벗어난 사상을 여럿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소설을 마무리하며, 전하고자하는 바를 분명히 했다.
이 소설이 여성폭력에 대한 저항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온갖 불합리와 폭력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한다고.
~ 비극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우리 모두가 주인공인 비극 말이다.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에 맞춰, 비극을 상연하는 무대의 커튼은 스르르 위로 말려 올라간다. 죽음만이 그 커튼을 다시 내릴 수 있는 지겨운 공연. 앙코르도 받을 수 없는 단 한 번의 공연.
할 수 있는 일은 이 비극이 황홀해지도록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
- 황홀한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