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 첫 부서발령
눈물의(?) 연수기간이 끝나고 골든위크의 꿀 같은 휴식도 다 지나갔을 때, 우리 동기 7명은 다시 한번 회사에 전원 집합되었다. 무슨 대단한 발표라도 하듯이 한 사람씩 앞으로 불러서는 임명장을 주는데, 운 좋게도 나는 내가 지원한 부서로 발령되었다. 바로 연극제작부. 그렇다, 처음부터 매니저 생활을 한건 아니고, 첫해에는 뮤지컬과 연극을 만드는 부서에서 막내 어시스턴트 프로듀서(노예)를 했더랬다.
연극제작부를 지원한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일단 이 회사에 붙었으니 다니긴 다녀야겠는데, 워라밸 최악 중 최악이라는 배우 매니저를 하기는 싫고, 음악 만드는 부서는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부담스러웠다. 그나마 한국에선 대학로를, 일본에선 시모키타자와를 좀 다녀본 짬바로 대충 비벼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이것이 정말이지 큰 실수였지.
이 부서는, 일본어로 표현하자면 "여자의 정원(女の園)" 즉 여초 그 잡채였다. 여중에서 여자들의 인간관계를 처음 경험하고 죽어라 골머리를 앓아 사춘기 폭격을 정면으로 맞아본 사람으로서, 어우 나도 여자지만 여자만 잔뜩 모여있는 집단은 진짜 내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로테이션 연수에서 이미 여기가 싸하다는 건 내 레이더망에 걸리고도 남았지만, 안타깝게도 희망부서 제출은 로테이션 돌기 전에 낸다는 것이 함정. 생각해 보니 그럴 거면 로테이션을 왜 돌리나 싶네, 참나.
비단 여자가 많은 것만이 문제일까, 그럴 리가. 고질적인 예산부족으로 사람을 싸게 쓰는 게 미덕이 되어버린 곳이라, 계약직 아니면 파견사원 아니면 아르바이트생이 정말 많았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갓 들어온 따끈따끈한 신입사원인 나보다 돈을 현저히 덜 받는 베테랑이 여기저기 널렸다는 것이다. 그들 눈에 내가 곱게 보일리가 만무하다.
그들은 철저하게 공동생활을 지향했다. 말도 안 되는 업무량으로 바빠서 허덕이면서도 점심은 꼭 같이 먹어야 한다는 의문의 룰이 존재했다. 아마도 유일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다 같이 모여서 하하 호호 상사 프로듀서 씹기 대작전 타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겠지. 상사를 껌 만드는 건 예나 지금이나 늘 있는 일이고, 그걸로 직장생활 스트레스가 풀린다면 사실 싸게 먹히는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런치타임에 함께하지 못하는 누군가 역시, 순식간에 껌 2호 껌 3호가 되어서 잘근잘근 씹힌다는 것이었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길은 없으나, 몸도 마음도 어렸던 23살의 나로서는 점심시간이라는 꿀 같은 휴식에 끊임없이 누군가의 악담을 들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참 고역이었다. 어떨 때는 정말이지 "저 일보너 잘 몰라효우" 하면서 눈 귀 막고 입으로 밥만 먹고 싶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순수함을 가졌던 터라 "이것이 지쳐버린 예술인들의 거친 삶인가" 정도로 받아들였다. 지금은 그들이 예술인도 뭣도 아닌 그냥 일개 직장인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그때는 나 자신도 예술인이 되고 싶은 갈망이 있었기에, 나의 미래인 그들 역시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밖에 없었다.
한 달쯤 됐을까, 드디어 나에게도 "담당 작품"이라는 것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