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여초의 끝판왕, 연극제작부에서
드디어 나도 한 작품의 제작진으로 일할 수 있다니! 캄캄한 앞날은 예상조차 하지 못한 채 잠시동안 가슴이 부풀었던 것 같다. 순수했던 나란 인간이여.
우선 나에게 주어진 미션은 굉장히 간단했다. 심지어 연극제작과는 일견 아예 상관이 없는 업무였다. 바로 해외에서 초청한 연출가와 그의 가족이 한 달간 지낼 집 구하기. 어디 멀리에서 굉장히 유명한 연출가를 불렀는데, 그 일가가 연극 제작기간 동안에 지낼 수 있는 위치 좋고 조망 좋고 가격은 더더욱 좋은 집을 구하는 것. 심지어 어린아이 둘이 딸려오니, 집안에 계단이 있거나 동네가 어둡거나 등등 미취학 아동에게 적합하지 않은 물건은 전부 아웃. 연습이 없는 날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을 산책하고 시민센터에서 이것저것 "문화체험"을 시켜주고 싶으니, 적당한 시설이 주변에 배치되어 있는 곳 일 것. 솔직히 생각했다. 아니 그걸 왜 나한테 찾으래?
그래도 어쩌겠나, 까라면 까야하는 게 신입의 숙명인 것을. 우선은 연습실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렌털 하우스는 죄다 탈탈 털어 리스트를 만들었다. 익숙지도 않은 엑셀을 요리조리 눌러가며 각각의 어필할만한 포인트까지 비고란에 적어가면서. 전철역까지 걸어서 몇 분이고, 세븐일레븐이 몇 미터 반경에 있고, 놀이터가 딸린 큰 공원이 가까이에 있다는 등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속으로는 "어차피 돈도 우리가 내는데 닥치고 그냥 대충 있다가 갈 것이지"라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한 작품을 이끌어갈 연출가의 안부와 컨디션이 결국은 나와 내 미래의 안녕이라는 것을 어린 나는 아직 몰랐다. 그들이 갑질을 해서가 아니라(오해 금지), 세상 뛰어난 연출가라 하더라도 결국엔 다 같은 사람인지라, 보금자리가 마음에 들고, 집 근처에서 사 먹은 밥이 맛있고, 아이들이 잘 뛰어놀았다는 등의 일상에서 얻은 작은 만족이, 일을 함에 있어서 최대치의 퍼포먼스를 끌어내는 데에 작던 크던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구 반대편에서 가족들까지 대동하여 왔을 정도면 그들이 만족할만한 거주환경을 제공하는 게 초청한 입장에선 당연한 일인데, 당시의 나는 그런 것 따위는 생각할 여유도 내공도 없는 하루살이 신세였다.
주어진 예산에 맞게 어떻게든 괜찮은 집을 찾으려 짱구를 굴리고 또 굴려서 리스트를 완성하자 내려진 다음미션은 직접 가서 집 컨디션 확인하고 사진 찍어오기. 일주일 내내 집만 보러 다니게 될 줄 몰랐기에, 첫 단독 외근이라고 나름 설렜었더랬다. 앞서 말했듯이 신인들은 정장에 구두가 디폴트였는데, 하루종일 집 보러 발발거리고 돌아다닐 것이니 편안한 복장으로 출근해도 되냐고 물었더라면 참 좋았을 것이다. 겁 많은 쫄보, 미련퉁이 나란 녀석은 그거 물어보기가 무서워서 풀세팅으로 출근, 가방에 청바지와 운동화를 챙겨가지고 다녔다. 선배에게 강제 왓츠 인 마이 백을 당하고는 "뭐 하니? ㅎ 뭣하러 귀찮게 그러고 다녀, 그냥 평상복 입고 출근해"라고 도비 취급을 당하기 전까지 한 3일을 미련하게 전철역 화장실에서 꾸역꾸역 나만의 패션쇼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연출가 패밀리가 머물 집이 구해져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그의 연출작에는 더 이상 관여하지 못하고 다음 작품의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