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작품이 부동산 중개인 놀이로 허망하게 끝나고, 다음 작품으로 노예살이를 하러 떠났을 무렵. 처음으로 휴일 출근을 명령받았다. 코엔지에 위치한 소극장에 연극 관계자들이 모여서 찌라시를 접는 성스러운 시간을 마련했으니, 니가 대표로 가서 열심히 우리 작품을 홍보하라는 것이었다. 소극장으로 미리 보내둔 몇백 장의 찌라시를 긴 테이블 위에 한 작품씩 차례대로 나열해 놓고는, 인간이 몸소 컨베이어 벨트가 되어 빙글빙글 돌면서 여러 종류의 찌라시가 한 묶음이 되도록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줍줍 해서는 마지막 테이블에 배달하는 아주 기괴한 의식이 시작되었다. 말도 안 되는 그림 실력으로 표현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일단 이 작업을 일요일에 나와서 하고 있다는 자체가 엄청난 현타였고, 둘째로는 계속 같은 방향으로 돌면서 손은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갈수록 어지러워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나와있는 다른 이들은 너무나 진지하게 찌라시 접는 기계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으니, 그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나 역시도 집중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일본이 엄청난 구식 나라라는 얘기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아무리 10년 가까이 된 이야기라고 해도, 이게 진정 본사 사원을 보내서 치를 일이냔 말이다. 그 시간에 "진짜" 마케팅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작품 홍보에는 뭐가 필요한지, 찌라시를 접는 법을 알려줄게 아니라 좋은 찌라시를 만드는 비법을 전수하는 게 백번 천 번 생각해도 맞는 일일 것이다. 종이 쪼가리를 많이 뿌리면 그만큼 관객이 모일 것이라는 생각 자체도 엄청나게 구식이거니와, 놀라울 정도로 비효율적인 작업방식에 말 그대로 정이 뚝 떨어졌다. 내가 만약 연극 동아리에 소속된 학생이었다면 이마저도 청춘물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을지 모르지만.
집 찾으러 동경 시내를 누비고, 주말에 나와서 막노동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꽤나 흘러있었다. 신인이 뭘 하루아침에 배우겠냐만은,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한 것이다. 뭐 하나 제대로 배운 게 없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가 고민을 토로하면 선배들이 하는 반응은 딱 한 가지였는데 "지금이 좋을 때야. 바빠지면 찌라시 접고 싶어도 접으러 못 가니까, 지금을 즐겨"였다.
얼마 후, 나도 멋들어진 일 시켜달라고 징징대던 신입사원은 선배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비로소 몸소 체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