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의 끝을 잡고

by 빵주

재택근무를 하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료들과 캠핑을 가는 날이라 한창 운전 중일 텐데 이상했다.


"여보세요?"

"어, 난데. 지금 나 어디 있게?"

"캠핑 가는 길 아니야?"

"나 지금 레인보우 브릿지 한가운데에 서있어. 운전하다가 갑자기 타이어가 날아갔거든"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니지, 이렇게 멀쩡히 전화를 해왔다는 것은 적어도 내 남편 목숨은 무사하다는 것인데. 숨을 고르고 천천히 들어본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온갖 캠핑 용품들을 이삿짐처럼 잔뜩 실은 남편의 차가 수도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수도고속도로는 동경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아름답고도 악명 높은 도로로, 도쿄타워나 레인보우 브릿지가 보이는 야경맛집인 동시에 워낙에 분기점이 많고 차선이 좁아서 초보자들은 엄두도 못 내는 곳이다.



대피소도 제대로 없는 곳에서 남편의 차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지만 남편으로써는 대책이 없었을 것이다. 교통량이 많은 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멈춰서는 것만큼 알기 쉬운 자살행위가 있을까. 아니, 자살도 아니지 남의 목숨까지 왔다 갔다 하는 테러행위에 가까울 것이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해서든 일반 국도로 빠져야겠다고 판단한 남편은 점점 굉음을 내기 시작하는 차를 억지로 끌고 진땀을 뺐다. 빨리 고속도로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속도를 좀 냈는데, 그렇게 얼마쯤 가다 보니 출처 불명의 소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일단 살았다고 느낀 남편이 핸들을 다시 꽉 붙잡은 순간 설상가상 차가 심하게 덜컹거리기 시작했고, 사이드미러에는 떼굴떼굴 굴러가는 타이어가 보이더란다. 절망도 잠시 마침 레인보우 브리지에 올라탔고 얼마 안 가 차를 세울 수 있었다. 다급히 차를 세운 남편이 제일 먼저 한 것은 도망간 타이어의 행방을 찾는 일. 혹시나 다른 차에 부딪혀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무지하게 가슴을 졸였다고 한다. 다행히 남에게 피해 주지 않은 채 타이어의 도주는 끝이 났고, 남편의 차는 렉카되어 공장으로 보내졌다.




평소 바쁜 남편에게 캠핑은 말 그대로 숨 쉴 구멍이다. 이 정도의 시련에 캠핑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보험회사가 마련한 렌터카에 손수 캠핑 용품을 옮겨 실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애마는 타이어만 잃은 것이 아니었다. 타이어가 맛이 간 상태로 무리하게 주행한 탓에, 온갖 곳에 대미지를 입어 언제 수리가 끝날지 알 수 없었다. 한동안은 렌터카가 우리의 이동수단이 되어줄 것이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다른 차 타는 재미나 느껴보자 싶었다. 며칠 후 남편과 장을 보려고 렌터카에 탄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앞 유리창의 흠집이었다. 처음엔 뭔가 묻었나 싶어 손으로 슥슥 닦아봤는데, 웬걸 유리가 박살 난 것이었다. 설마 싶어 남편에게 이거 뭐냐고 물으니,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는 그게 뭐냐고 나에게 되묻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어젯밤에 집에 오는 길에 뭔가 불길한 소리가 났단다. 뭘 잘못 밟거나 했겠지 싶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아마도 돌덩이가 날아왔던 것 같다고. 그는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 쥐며 절망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렌터카 빌릴 때, 돌덩이 같은 거 날아와서 차에 흠집 난 거는 보험 안된다고 그랬어"


아니, 내 잘못도 아니고 돌덩이가 멋대로 날아온걸 왜 우리 보고 물어내라는 건지. 운전자에게 책임이 없는 예상외의 해프닝 (예를 들면 갑작스러운 태풍으로 물건이 날아와서 차에 떨어진다거나) 은 보상이 안된단다. 무슨 논리인지는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잘못하면 유리창 전면 교환으로 몇십 만 엔이 깨질 텐데 큰일 났다 싶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애초에 남편 차가 회사 이름으로 되어있어서 그 차나 이 차나 수리비용은 경비처리가 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연일 계속되는 이러한 불행은 우리 부부를 께름칙한 기분이 들게 하기엔 충분했다.




이미 타이어 사건에서 양가 부모님들의 반응은 심상치 않았으니, 한국에 있는 우리 엄마 아빠는 절 투어를 하며 우리들의 안전을 기원했다. 우리 시어머니도 교통안전에 연이 깊다는 절과 신사를 돌면서 부적을 사모으셨다. 그런데 렌터카에서도 이런 일이 생기니, 정말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말과 올해 뭐가 있는 거 아니냐 는 반응이 동시에 나왔다. 부모님들께서 잘 기도해 주셨으니, 앞으론 괜찮겠지 스스로를 위로했다. 론 이게 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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