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리던 본격적인 막내 생활이 시작되었다. 신주쿠에 있는 연습실에 터를 잡고 우리 배우님, 스탭님들이 쾌적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어떻게 최선을 다하냐고? 별거 없다. 긴 연습시간 동안에 그들이 먹고 쓸 것들을 잘 구비해 놓으면 된다. 보통 연습기간 동안에는 식사를 따로 제공하지는 않는다. 대신 극장에 입성을 하고 현장 리허설을 하는 날에 도시락을 돌리고, 첫공 날에는 출장뷔페 형식으로 따뜻한 식사를 대접한다. 연습실에서 지내는 기간에는 스탭, 배우 할거 없이 각자 오니기리 등으로 간단히 때워가며 오로지 자신의 할 일에 몰두하는데, 그럴 때 필요한 건 바로 적당한 염분과 당분이다.
일본인들은 맹물보다 보리차를 선호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연습실에 도착해서 제일 처음 하는 일은 티백을 우리는 것이다. 언제 산 건지 가늠도 안 되는 커피머신에 세일 때를 노려서 대용량으로 산 커피가루를 넣어놓고, 물을 채운다. 연습실 주인이 지정한 쓰레기봉투를 제자리에 세팅하고, 막내 업무의 하이라이트인 그날의 과자 나열하기에 돌입한다. 적당히 짭짤한 스낵류, 단짠스러운 비스킷류, 달달한 초콜릿에 목사탕까지. 막내의 센스로 과자 라인업이 꽤나 괜찮은 날이면, 과자코너 단골손님인 앙상블이나 댄서들로부터 소소한 칭찬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과자가 너무 목에 들러붙는다거나, 달달함과 짭짤함의 발란스가 맞지 않는다거나, 원하는 과자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눈총을 받기도 한다. 여기서도 다시 한번 생각한다. 돈은 우리 회사에서 내니 닥치고 먹어.
할 줄 아는 게 과자 사 오고 보리차 우리는 것밖에 없던 나로서는, 늘 웃는 얼굴로 막내미를 뽐내는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항상 저자세로 그들의 컨디션을 묻고, 필요한 건 없는지 눈치를 보고, 쓸데없는 잡담에도 배꼽을 잡았다. 막내는,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감정 쓰레기통 비슷한 역할까지 함께 해내야 했다. 가끔은 그들의 가시 돋친 말과 거친 농담마저도 웃음으로 넘기며 오롯이 스트레스 풀기용 인형이 되어야 할 때도 있었다. 다행히 그런 모습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는지 나름대로 예쁨을 받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긴장을 놓은 게 문제였다.
연출가의 사정으로 1주일 정도 연습을 쉬게 되었고, 마침 연습실에 설치한 세트를 조금 손봐야 할 때가 되어스탭들만 현장으로 출근하기로 되어있었다. 나는 제작진 대표로 (다른 선배들이 기회다 하고 쉬고 있을 때) 매일같이 연습실에 얼굴도장을 찍었다. 나오긴 나왔는데 딱히 할 일은 없어서 한쪽에 딸린 작은 방에서 괜히 컴퓨터로 열일하는 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눈꺼풀이 그렇게 무거운 것이다. 셀프로 볼때기를 때리고 얼음물을 먹고 스쾃을 해봐도 도저히 눈이 떠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점점 더 졸음이 몰려왔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쪽방 불을 끄고 의자를 쪼르륵 붙여서 간이침대를 만들어 드러누워버렸다. 어차피 세트 손보는 건 내가 할 일이 아니고, 필요한 게 있으면 알아서 부르겠지. 휴일도 반납한 근무에 지쳤던 어린양은 순식간에 깊은 잠에 빠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세트팀 대장이 문을 벌컥 열고는 내게 소리쳤다.
"뭐 하자는 거야!! 장난해?! 여기서 잠을 자다니. 당장 나와!!"
이런 미친. 뭐 됐다. 얼굴에 주르륵 흐른 침을 닦지도 못한 채 벌떡 일어나 몇 번이고 죄송하다고 소리쳤다. 거의 도게자 할 기세. 컴퓨터와 마주한 채 꾸벅꾸벅 조는 정도였다면 그렇게 혼나지는 않았으리. 간덩이가 부은 거지 아예 자리를 깔고 누워버렸으니, 화가 날 만도 하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이 일로 시말서를 썼던 거 같기도 하고. 참~~~ 미안했수다.
지금의 MZ세대가 들으면 기겁하고 도망칠 정도로 인권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하는 상황의 연속에서, 나는 일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한번 해볼까 하는 정도의 각오로 뛰어들기엔 그곳은 너무나 험난한 전쟁터였던 것이다. 그런 심리는 태도로 나타나기 마련이고, 같은 현장에 투입된 선배 사원의 눈밖에 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나의 태도가 모두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이 선배는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X 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