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남편은 일본인이다. 동경에서 나고 자란 도시남자. 그와 사는 나란 여자는 20살 때까지 서울 촌년이었다. 그것도 유독 맵부심이 심한. 맵다는 것은 미각이 아니라 통각이라 매운 음식을 즐기는 것이 자학에 가깝다는 얘기도 있다. 어쩌면 그럴지도? 엽떡에 청양고추를 썰어 넣어 한입 먹을 때면 온몸의 땀구멍이 죄다 열리면서 엄청난 희열을 느끼곤 하니까. 이 정도면 스스로를 고통에 몰아넣는 걸 즐기는 편인건 맞는 것 같다. 일본에서 흔히 말하는 M성향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이렇게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자란 두 남녀가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음식들을 함께 즐겼겠는가. 한국음식 이라고는 삼겹살밖에 몰랐던 남자는 돼지껍질을 즐겨 먹게 되었으며, 신라면쯤은 우유 한잔만 있다면 거뜬하게 한 그릇 비울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여자는 남자에게 새로운 한국요리를 소개하는 걸 즐겼다. 휴가 때면 그를 데리고 서울 곳곳을 누비며 길거리 음식의 재미와 후식 볶음밥의 매력을 알려주었다.
신혼을 원룸에서 시작한 탓에 첫 2년 정도는 요리다운 요리는 하질 못했다. 도저히 손바닥만 한 주방에서 채소나 고기를 지지고 볶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침 얼마 안 가 코로나가 터져서 우리는 집에서 칩거하며 매일같이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한국만큼 엄청난 배달 시스템이 완비되어 있지는 않아도, 귀찮을 때 하나씩 시켜 먹기에는 충분했다. 아니면 편의점으로 향했다. 알다시피 일본 편의점 음식은 꽤나 실하다. 도시락부터 디저트까지 굉장한 퀄리티를 자랑한다. 한국의 어느 가수는 일본에 오면 꼭 편의점에서 달걀 샌드위치를 먹는다 하더라. 그렇게 2년 가까이 집에 있는 주방도구들을 썩혔다. 2021년에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온 후에야 아 이제는 뭐라도 좀 해 먹어야 돈도 더 잘 모이고 건강에도 좋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사이에 둘 다 나이를 먹지 않았는가. 언제까지 배달음식에 편의점 인스턴트 음식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백주부 아저씨의 동영상을 하나씩 클리어하며 요리에 재미를 붙였는데, 문제는 맵기 조절이었다. 나는 파스타에도 핫소스 비를 내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고, 내 남편은 정말 신라면 (with 우유)까지가 한계인 남자였다. 한날은 고기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제육볶음을 만들었다가 상 치를 뻔했다. 얼굴이 검붉어질 정도로 켁켁대는 남편을 보고 놀라서 나도 한입 맛을 보는데, 어라 이상하다 내 입에는 초등학생도 먹을 수 있을 만큼 맵기라고는 1도 안 느껴지는 것이다. 미각이 이상한 게 아니다. 맛은 있는데 맵지는 않을 뿐. 그런 나를 곁눈질로 흘겨보며 남편은 거의 괴물을 눈앞에 둔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다. 배달도 편의점도 일본음식 아니면 양식이 주 메뉴이다 보니, 내가 이 정도로 매운 음식에 미친 여자인 줄은 잘 몰랐나 보다. 가끔 한인타운에 가서 엽떡을 먹을 때면 뭘 저런 걸 먹나 하는 눈빛으로 신기하게 쳐다보긴 했었다. 나도 양심이 있지 엽떡을 먹어보라고 권할 수는 없어서, 웬만큼 먹고 나머지는 포장한 뒤 남편 줄 후라이드 치킨을 사러 가곤 했다.
남편은 굉장히 당황하며 역시 우유로 매운기를 잠재우려 했다. 그것도 안되자 입안에 얼음을 두개정도 물었다. 하지만 나는 알지. 매울때는 차가운게 아니라 뜨거운걸 마셔야 한다는 것을.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그에게 내밀자 얼굴에 물음표가 한가득이다. 너의 고통을 내가 아니, 날 믿고 이 뜨거운 물을 삼켜보라 말했다. 물불 가릴때가 아니라 그런지 의외로 순순히 따라주었다. 난리가 난 입속에 뜨거운 물을 들이 부으니, 처음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하는게 안쓰럽기도 하고, 어딘가 웃기기도 하고. 이내 구강 진화에 성공한 그가 내뱉은 말은
이건 아니야. 진짜로.
나는 양손을 펼치고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가 일본인인걸 감안해도 이 정도로 염라대왕과 하이파이브를 한다는게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저렇게나 괴로워하니 요리사로써 피드백을 받아들일 필요는 있어보였다. 그 후로 나는 되도록 프라이팬을 양손으로 써가며 두 가지 버전의 요리를 만들어냈다. 정 여건이 안되면 맵지 않게 만들어 놓고 내 접시에는 불닭소스나 핫소스를 대기시켜 놓았다. 가끔 조절에 실패했을 땐 남편 걸 따로 덜어서 우유나 치즈를 넣고 다시 끓인다. 나의 이런 수고를 알아주는 건지 본인 입에 매운 음식도 웬만하면 후하게 평가해 준다.
맛은 있는데 조금 매워. 우유 좀 부을게. 근데 진짜 맛있어.
재빠르게 우유를 따르는 손과는 달리 다급하게 맛은 있다는 말을 덧붙이는 이 남자.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한이 있어도 내가 해주는 밥 얻어먹고 살고 싶어 하는 남편이 참 웃프고 귀엽다.